박명광 전 모교 대외협력부총장에게 듣는 <br>새 경희 창조! 제2의 도약! 개교 60주년의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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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5 17:25
우리 모교 경희대학교는 오는 2009년 개교 60주년을 맞이한다.
60주년을 바라보면서 “새 경희 창조”, “제2의 도약”이란 목표와 함께 경희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시점에서, 약 8년전 모교 대회협력부총장으로서 '50주년기념행사'를 주관하며 발전기금을 모으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박명광(경제65/ 21회, 열린우리당 의원) 동문을 만나보았다.
Q. 8년 전에 개최된 개교 50주년 행사는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성대하게 거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큰 행사를 준비하시면서 역점을 둔 내용은 무엇입니까?
- 첫 번째는 경희의 비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개교 50~60주년을 단순히 축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의 경희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비전 수립에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두 번째는 의미 있는 행사들을 개최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4의 정부로서 NGO의 역할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UN과 NGO대회를 열었고, 스탠포드 대학교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단순히 얼마 모으자는 식이 아니라 경희의 60년 70년 80주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동문 주소록이 미약해서 약 40명의 아르바이트 학생을 동원하여 3개월간 동문 주소를 파악하여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6만명의 경희 동문을 찾았습니다. 이 작업이 동문 네트워크 구성에 큰 기초를 닦았다고 봅니다.
60주년 맞아 인맥활용 위한 휴먼 넷 사업 전개필요
인터내셔널센타 건립과 강남 캠퍼스 추진할 단계....
Q 그 당시 전국에 퍼져있는 동문들이 모교에 관심을 갖고 발전기금모금에 적극 참여했는데... 동문들로 하여금 동참하게 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 동문들에게 학교 발전을 위한 발전 기금을 내 달라하고 하면 호응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목적을 제시했습니다. 평화의 전당과 동문회관 건립을 목표로 삼고, 등록금 한번 더 내기 운동을 통하여 모금했습니다. 그 외에도 학과별 홈 커밍데이 기획하는 등 동문들이 모교에 대한 관심 더불어 학창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어떤 성과를 거두셨나요? 보람은 무엇이었습니까?
- 1998년 3월 경희대학교 50주년 기념 행사 준비 위원장을 맡은 직후 그 해 12월 10일 경희 발전 후원의 밤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30억원으로 정했습니다. 무리한 목표라는 평들이 많았으나 그 해 12월 10일 당일에 무려 50억원의 성금을 모았습니다. 힐튼호텔의 넓은 행사장을 가득 채운 경희인들이 적극적으로 모금에 참여했습니다. 일년동안 열심히 같이 일한 학교직원, 교수, 동문, 학생 경희 구성원 모두가 감동을 함께 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Q. 모교 발전과 동문들의 동참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교 60주년에는 어떤 방법으로 동문들의 참여를 도울 수 있을까요?
- 이제는 학교가 동문들에게 발전 기금을 내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동문 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학교가 동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리고 어떻게 함께 잘 될 것인가라는 발전적인 고민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만 동문들이 네트위크화 하여 동문들이 수시로 인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휴먼 넷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동문회와 모교가 협력하여 추진할 중요한 일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 50주년 때 추진하려다 못한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인터내셔널센타를 건립하는 것과 강남 캠퍼스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세계화를 가장 먼저 주창해온 경희대학인 만큼 인터내셔널센타는 꼭 하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학교 위치가 시내와 많이 떨어져 있는 만큼 강남 캠퍼스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경희정신으로...
경희에서 배운 신념을 철학으로 살아갈 각오입니다.
Q 경제학자로서 후학을 양성하시다가 정치를 하시고 있는데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실감하실 것 같습니다. 교수시절과 정치가로서 삶을 비교해 주시고 가치관의 변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그 전부터 정치에 참여하라는 유혹이 없지 않았으나 일체 관심이 없었는데 늦게 정치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가치는 선진국이고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자랑스런 국민의식이 있는데 정치가 국민의식과 경제 수준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2003년 신당연대등의 정치 활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그러나 늦게 품은 청운의 뜻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의 벽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라고 할까요? 현실정치는 좀 더 다양한 응용을 요합니다. 밖에서 보는 정치와 안에서 보는 정치가 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정치의 기본적 목적은 국민이 편안하게 잘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흔들린다면 정치를 해야할 명분도 보람도 없습니다.
Q 현재 중점을 두고 추구하시는 정책이 있습니까?
- 평화가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그간 한국 경제에 대한 저평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동적인 남북관계를 통해 북의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과 북의 경제 시너지 창출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Q 경희인으로서 동문들과 재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해 주십시오.
-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도 있지만 나는 경희대를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내가 있게 된 것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경희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경희에서 배운 신념을 철학으로 살아갈 각오입니다.
특히 경희 출신의 사회 지도층인사들 중 경희 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높게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경희인과 경희대학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경희인 모두 자부심을 갖고 상생의 큰 역사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또 선배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생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려고 노력해 왔지만 나이가 드니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열심히’란 ‘부지런히’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개인의 역사가 바뀝니다. 역사를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경희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 박명광 동문의 주요 경력 >
1963 홍성고졸
1973 경희대 경제학과졸
1978 필리핀 산토토마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박사
1977 필리핀 산토토마스대 특별강사
1979-1988 경희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1981 재무부 정책자문위원
1987 경희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장
1988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90 경희대학교 학생처장
1993 경희대학교 정경대학장
1994 경희대학교 기획관리실장
1999 경희대학교 NGO대학원장
1999 경희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2002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제연대 운영위원장
2004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열린우리당)
60주년을 바라보면서 “새 경희 창조”, “제2의 도약”이란 목표와 함께 경희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시점에서, 약 8년전 모교 대회협력부총장으로서 '50주년기념행사'를 주관하며 발전기금을 모으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박명광(경제65/ 21회, 열린우리당 의원) 동문을 만나보았다.
Q. 8년 전에 개최된 개교 50주년 행사는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성대하게 거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큰 행사를 준비하시면서 역점을 둔 내용은 무엇입니까?
- 첫 번째는 경희의 비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개교 50~60주년을 단순히 축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의 경희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비전 수립에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두 번째는 의미 있는 행사들을 개최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4의 정부로서 NGO의 역할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UN과 NGO대회를 열었고, 스탠포드 대학교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단순히 얼마 모으자는 식이 아니라 경희의 60년 70년 80주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동문 주소록이 미약해서 약 40명의 아르바이트 학생을 동원하여 3개월간 동문 주소를 파악하여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6만명의 경희 동문을 찾았습니다. 이 작업이 동문 네트워크 구성에 큰 기초를 닦았다고 봅니다.
60주년 맞아 인맥활용 위한 휴먼 넷 사업 전개필요
인터내셔널센타 건립과 강남 캠퍼스 추진할 단계....
Q 그 당시 전국에 퍼져있는 동문들이 모교에 관심을 갖고 발전기금모금에 적극 참여했는데... 동문들로 하여금 동참하게 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 동문들에게 학교 발전을 위한 발전 기금을 내 달라하고 하면 호응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목적을 제시했습니다. 평화의 전당과 동문회관 건립을 목표로 삼고, 등록금 한번 더 내기 운동을 통하여 모금했습니다. 그 외에도 학과별 홈 커밍데이 기획하는 등 동문들이 모교에 대한 관심 더불어 학창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어떤 성과를 거두셨나요? 보람은 무엇이었습니까?
- 1998년 3월 경희대학교 50주년 기념 행사 준비 위원장을 맡은 직후 그 해 12월 10일 경희 발전 후원의 밤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30억원으로 정했습니다. 무리한 목표라는 평들이 많았으나 그 해 12월 10일 당일에 무려 50억원의 성금을 모았습니다. 힐튼호텔의 넓은 행사장을 가득 채운 경희인들이 적극적으로 모금에 참여했습니다. 일년동안 열심히 같이 일한 학교직원, 교수, 동문, 학생 경희 구성원 모두가 감동을 함께 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Q. 모교 발전과 동문들의 동참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교 60주년에는 어떤 방법으로 동문들의 참여를 도울 수 있을까요?
- 이제는 학교가 동문들에게 발전 기금을 내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동문 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학교가 동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리고 어떻게 함께 잘 될 것인가라는 발전적인 고민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만 동문들이 네트위크화 하여 동문들이 수시로 인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휴먼 넷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동문회와 모교가 협력하여 추진할 중요한 일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 50주년 때 추진하려다 못한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인터내셔널센타를 건립하는 것과 강남 캠퍼스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세계화를 가장 먼저 주창해온 경희대학인 만큼 인터내셔널센타는 꼭 하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학교 위치가 시내와 많이 떨어져 있는 만큼 강남 캠퍼스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경희정신으로...
경희에서 배운 신념을 철학으로 살아갈 각오입니다.
Q 경제학자로서 후학을 양성하시다가 정치를 하시고 있는데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실감하실 것 같습니다. 교수시절과 정치가로서 삶을 비교해 주시고 가치관의 변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그 전부터 정치에 참여하라는 유혹이 없지 않았으나 일체 관심이 없었는데 늦게 정치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가치는 선진국이고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자랑스런 국민의식이 있는데 정치가 국민의식과 경제 수준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2003년 신당연대등의 정치 활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그러나 늦게 품은 청운의 뜻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의 벽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라고 할까요? 현실정치는 좀 더 다양한 응용을 요합니다. 밖에서 보는 정치와 안에서 보는 정치가 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정치의 기본적 목적은 국민이 편안하게 잘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흔들린다면 정치를 해야할 명분도 보람도 없습니다.
Q 현재 중점을 두고 추구하시는 정책이 있습니까?
- 평화가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그간 한국 경제에 대한 저평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동적인 남북관계를 통해 북의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과 북의 경제 시너지 창출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Q 경희인으로서 동문들과 재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해 주십시오.
-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도 있지만 나는 경희대를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내가 있게 된 것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경희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경희에서 배운 신념을 철학으로 살아갈 각오입니다.
특히 경희 출신의 사회 지도층인사들 중 경희 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높게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경희인과 경희대학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경희인 모두 자부심을 갖고 상생의 큰 역사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또 선배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생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려고 노력해 왔지만 나이가 드니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열심히’란 ‘부지런히’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개인의 역사가 바뀝니다. 역사를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경희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 박명광 동문의 주요 경력 >
1963 홍성고졸
1973 경희대 경제학과졸
1978 필리핀 산토토마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박사
1977 필리핀 산토토마스대 특별강사
1979-1988 경희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1981 재무부 정책자문위원
1987 경희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장
1988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90 경희대학교 학생처장
1993 경희대학교 정경대학장
1994 경희대학교 기획관리실장
1999 경희대학교 NGO대학원장
1999 경희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2002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제연대 운영위원장
2004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열린우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