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동문회보 지령200호의 발자취

경희대학교 총동문회
Kyung Hee University Alumni Association
z특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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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문회보 지령200호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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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문회보는 1979년 9월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타블로이드판 8면 세로쓰기 형식의 월간지로 발행되었다.
당시 강석국 동문회장은 “慶熙會報”제하의 창간호를 발행했으며 2006년11월“총동문회보”제200호를 발간하기까지 2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이보다 앞서 1968년 12월 최두고 회장 재임 당시“경희동문”이라는 제호로 타블로이드판 4면의 회보를 발간하였으나 언제까지 발간하였는지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지령 200호 안에 넣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慶熙會報”는 1980년 6월까지 월간으로 발행하다가 1980년 8월 제9호부터 격월간으로 바뀌었고 당시 편집내용은 동문들의 활동과 동문회소식, 모교소식 그리고 사설(社說)을 실어 일간신문 형식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한가지 눈에 띄는 기사는 개교 30주년 기념 특집으로“옛날의 금잔디”라는 제목으로 당시 사회활동이 두드러진 동문들이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을 10여 회에 걸쳐 수록한 것인데 그때 소개되었던 많은 동문들이 지금도 활발한 사회활동과 함께 동문회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84년 4월 제28호부터 “慶熙會報”는 전면 가로쓰기 편집으로 바뀌고 87년 4월 제42호부터 43호 백상기 동문이 편집주간을 맡았다가 87년 11월 44호 강진환 주간으로 바뀌면서 88년 1월 제45호에 처음으로 표지에 컬러인쇄가 도입된다.
46호부터는 면수가 12면으로 증면되었다.
90년 7월 제52호부터 주간이 다시 백상기 동문으로 빠뀐다.
사무국장으로 있던 강진환 주간이 사퇴하고 다시 백상기 동문으로 주간이 바뀌었다.
  백상기 동문은 대학주보 편집장을 지냈고 동문회보를 창간한 강성국 회장 당시부터 회보 편집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오던터라 당시의 총동문회 재정 형편으로는 가장 적임자이기도 했다. 
 백상기 동문에 따르면 “1982년 8월 13일 제20호부터 본인이 총동문회의 위임을 받아 총동문회보를 독립채산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총동문회는 제작비의 일부를 분담하고 본인이 기자를 채용하여 기사취재, 편집, 제작을 완료하여 총동문회에 인계하는 방식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93년 1월 제65호부터 발행처가“경희대학교총동창회”에서 “경희대학교총동문회”로 바뀌었고 94년 5월 30일 제17대 정동성 회장이 취임하면서 제호가“慶熙會報”에서“慶熙大學校總同門會報”로 바꿨다.
그리고  96년 9월 제98호부터 회보를 사무국에서 직접 취재 편집하여 발행하게 된다.
  제27호부터 제97호까지 재정적자와 가진 어려움 속에서 회보를 제작해야 했던 백상기 동문의 노력과 공헌에도 불구하고 회보 취재, 편집, 제작을 포함한 외부제작은 정보의 이원화는 물론 총동문회에 대한 동문들의 관심도를 약화시켰고 총동문회의 의사전달 과정에도 차질을 가져왔다.
당시 동문회보의 사무국내 발행은 하나의 숙원사업이었다. 
총동문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백상기 동문으로 하여금 회보를 사무국 안에 들어와 제작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으나 당시 백상기 동문은 인쇄 편집사업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국에 들어와서 회보를 만들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였다. 
회장단에서는 결국 사무국에서 직접 발행하기로 결정하고 신문, 잡지 등의 편집경험을 가진 구현서 사무국장에게 회보를 직접 편집 제작하도록 했다.
이때 약 1년 동안 백상기 동문의 회보 취재를 돕던 강선욱 기자도 총동문회 직원으로 채용했다.

정동성 회장은 98호를 발행하면서 “제가 취임 전 8천부를 내던 회보가 지금은 3만부로 늘었고, 동문회보가 동문회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는 지난 9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총동문회는 회보의 발행 문제는 동문간의 결집과 동문회 자체의 발전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고, 수차에 걸친 회장단 회의에서 이를 관철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본인은 17대 회장임기 이전에 동문회 회보의 제작을 사무국에서 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지난 5월에 개최된 이사회와 대의원총회에서 오는 9월호부터  회보를 동문회 사무국에서 발행하도록 하는 사업계획을 제출하였습니다.
본인은 동문회보를 새로 창간한다는 생각으로 98호를 발행합니다“ 라고 썼다.

1996년 11월 제100호 기념호를 24면으로 발행했다.
인쇄도 옵셋 인쇄에서 윤전인쇄로 바꿨다.
100호 기념호에 백상기 동문의 “회보 100호가 나오기까지”라는 회고가 실려있다.
이사회를 겸한 ‘100호 기념 리셉션’을 열고 그동안 회보 제작에 공헌한 강진환, 백상기 동문에게는  감사패와 순금 ‘행운의 열쇠’가 수여되었다.
96년 12월 제101호부터 동문회보가 16면으로 증면되었다.
내용에 변화를 주기 위해 컬럼이나 기행 등 읽을거리도 조금씩 곁들였다.
동문 동정도 지면을 대폭 늘였다.
그러나 동문회 활성화에 따른 제반 기사의 증가로 인한 지면부족 현상은 예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해결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후에도 수차에 걸쳐 동문회보 편집의 변화가 시도되었다.
신문편집 경험이 많은 편집전문인들을 초청하여 주요동문 현항을 취재하도록 한다든가 인터뷰 전문기자를 사안별로 활용하는 방법 등이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취재 편집 기능 면에서는 뛰어났지만 동문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총동문회는 동문찾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회보 편집에도 동문 소식이 최우선으로 배려되었다.
2003년 3월 총동문회는 회보 6만부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16만 동문에게 3만부만 보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부수를 확장한다는 것은 제작비와 발송비를 생각해야 하는 것으로, 현재 회보 발송비는 우편요금의 인상과 함께 월간 1천 3백여만원으로 늘어났고 오는 11월부터는 1천4백만원으로 인상된다.
동문회보는 현재 연 10회 발행하면서 매월 6만부를 16면에서 24면으로 번갈아 내고 있다.
한회 발행 비용은 편집, 제작, 발송, 인건비를 합쳐 약 2천여만원이 소요되어 총동문회 연간 예산 약 3분의 2를 회보발행을 위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회보의 질을 향상시키는데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적어도 16면 이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전담 요원이 최소 2명 이상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과 같이 기자 한명으로 사무처장이 편집 전반을 관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16~24면을 번갈아 제작하므로 전문기자가 보충되어야 한다.
이에 따른 예산이 확보되어야 하며, 동문회보 광고 수입이 적어도 회보제작 발송비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령 200호는 총동문회의 발전과 함께 이룩한 것이고 300호 400호로 이어지는 동안 총동문회보가 동문들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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