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설-스승께서 영면에 드셨습니다.

경희대학교 총동문회
Kyung Hee University Alumni Association
z특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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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설-스승께서 영면에 드셨습니다.

관리자 0 3167
우리 24만 동문의 영원한 스승이신 미원 조영식 학원장님께서 2012년 2월18일 별세하셨습니다. 이미 모든 동문께서 부음을 들으셨겠지요. 많은 분들께서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셨고요. 애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더 오래 강건하신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가르침을 주셔야 할 스승께서 영면에 드셨으니 이보다 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사는 사람의 소관이 아니니 눈물을 뿌리며 보내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은 더 미어집니다.

 스승께서는 범인(凡人)이 몇 생애를 거듭 살아도 어려운 큰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1951년 피난 수도 부산에서 천막교사와 빚뿐이던 가인가(假認可) 초급대학을 인수해서오늘의 경희대학교로 발전시켜 내신 것입니다. 신생 대한민국의 초대부통령이던 이시영선생의 간곡한 부탁을 저버리지 못해 신흥초급대학을 인수하셨지만 스승의 가슴 속에는 이미 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이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서른 살 젊은이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원장님께서는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헤치며 정식인가를 받고, 4년제 대학에 이어 종합대학으로 모교를 키우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이상의 정성을 스승께서는 우리 모두의 배움터에 쏟으셨습니다. 그리고 1960년 3월 1일을 기해교명을 ‘경희대학교’로 바꾸셨습니다. 조선왕조 후기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영·정조의 정궁이 경희궁이었습니다.

 스승께서는 전쟁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 이 나라, 그리고 세계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문예부흥이라고 여기신 것입니다.‘ 네오르네상스’는 이미 그때부터 스승의 교육목표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우리의 스승 조영식 학원장님의 공적을 이 짧은 글 속에 담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다 기억하지 못하고 다 쓰지 못하는 것을 스승께서는 용서하시겠지요. 학원장님께서는 교육에 뜻을 세우신 이후 60여년 오직 한 길만을 걸으셨습니다. 교육 이외의 어떤 일도 스승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스승의 위대함이 거기에 있습니다.

 학원장님께서는 일찍이 세계와 역사를 내다보시는 혜안을 가지셨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문화와 평화와 인류사회 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서울캠퍼스를 건설하시면서 먼저‘문화세계의 창조’라는 교시탑 건립을 서두르셨습니다. 당시 스승께서 가지셨던 그 철학 신념 소망이 지금 21세기 인류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스승의 위대함은 이 점에서도 빛이 납니다.

 동문 여러분.
 스승은 가셨습니다만, 그 정신, 그 가르침은 오래오래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서울캠퍼스, 국제캠퍼스, 평화복지대학원의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영원히 새겨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은 가셨지만 우리는 스승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교정에 가시면 그곳에는 스승의 환한 웃음, 인자한 목소리가 여러분을 반길 것입니다. 스승님, 먼 길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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