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기-도봉산에서 본 경희의 미래

경희대학교 총동문회
Kyung Hee University Alumni Association
z특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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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기-도봉산에서 본 경희의 미래

관리자 0 3990
일일(一日)기자가 총동문등산대회에 동참한 것은, 스케치기사를 써 달라는 어느 한 은사의 부탁 때문이었다. 물론 기자 역시 경희대 동문이고 경희대에서 학문연구에 온갖 힘을 쓰고 있지만, 왠지 총동문등산대회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음을 우선 고백해야겠다. 기자가 아는 동문을 얼마나 만날까, 동문들 속에서 혼자 산을 오르지 않을까 등등의 걱정은, 그러나 기우였다. 도봉산으로 가는 찻길이 순조로웠던 것은 일종의 좋은 예감이었을까. 도착하자마자 1천여 명의 경희대 동문들이 서로에게 밝게 인사하고 오랜만에 선후배와 조우하여 그야말로 왁자지껄 화기애애. 기자도 아끼던 후배 부부를 하나 만났다. 집결지를 둘러싼 도봉산의 붉고 노란 단풍은 경희인의 반갑고 놀란 표정을 닮아 있었다.

하일성 동문의 사회는 힘이, 그리고 김성호 수석 부회장의 개회사는 자신감이 넘쳤다.  조인원 총장님의 인사말은 자긍심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조총장님께서 4년 전의 총동문등산대회에서 하신 말씀,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계적인 명문대학을 향해 한마음 한뜻으로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가자”는 웅장하고 광대한 비전의 말씀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음을 기자를 비롯한 1천여 동문이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국종합대학순위 5위, 이것 역시 과정이라는 요지의 말씀에 대해서 박수가 4-5차례 나오는 것은 일종의 각오이자 화답이었다. 한마음이었다. 숙연한 표정 가운데 기쁨이 있었다.

간단하리라 예견했던 기념촬영의 시간이 길어졌다. 오늘만큼은 조인원 총장님이 학교를 상징하는 좋은 모델이 되어주었다. 사진 한 컷에도 학교에 대한 애교심과 자부심이 들어있는 것이다. 조총장님은 학교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모델이었던 것이다. 동분서주 웃음웃음. 사진 찍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조총장님의 마음은 아마도 동문들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이었을 것이다. 스피커에서는 서원교-우이암-보문능선을 지나는 3시간 코스임을 울려댔지만, 삼삼오오 아니면 몇 십 명씩 모여 사진을 찍고 악수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한 쪽에서는 언제 올라갔다 올까 하는 걱정의 소리까지 들렸다.

이제 산행이다. 진행요원이 해 맑은 미소를 지닌 학생기자를 붙여줬다. 예우이리라. 삼사십 분쯤 올랐을까. 이 산행은 굳이 정산 등정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기자는 잠시 다리를 쉬었다. 마침 60년대 학번과 2000년대 학번이 함께 쉬는 묘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함께 온 것 같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그리 서먹서먹하지도 않았다. 만나고, 반갑게 인사하고, 학번을 맞춰보고, 선배는 가져온 가래떡을 뚝 띠어 나눠주고, 후배는 맛나게 먹고…. 이 모습이 왜 이리 정겹게 느껴질까. 경희인이라는 것, 그것은 나눔이고 마음이고 함께 함이리라. 하나 더. 짐이 무거우면 절 주세요. 후배다운 자세이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우이암까지는 올라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앞섰다. 우이암. 그 위에서 아래를 보니 알록달록한 단풍이 하늘을 한껏 이고 있고, 산자락이 그 형세를 갖추고 꿈틀대며 뻗은 모양새는 그야말로 경희대의 등용문에 사는 용이 막 승천하는 모습이었다. 경희가 웅비하려고 하고 있다. 나무는 나무대로, 잎사귀는 잎사귀대로 바람에 날려 흔들리면서 태양의 빛에 반짝이는 폼, 그것은 그야말로 혼연일체요 경희정신이었다. 성숙한 가을산, 기자는 거기에서 경희정신을 보았다. 이 벅찬 환상이 비단 기자 개인만의 경험이었을까. 등정하는 모두가 마음 속에서 그것을 보지 않았을까. 경희는 하나다. 미래다.

내려오는 길에서 몇몇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 중 하나. 백발의 동문이 자신의 청춘시대를 말하면서 회기동을 주름잡던 이야기였다. 기자가 그 동문을 봤을 때 거기에는 머리가 검게 되고 주름이 사라진 싱싱한 젊은이가 있었다. 총동문등산대회는 산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오르고 시간을 오르고 추억을 오르는 대회였다. 한 경희인이 열심히 살아왔다는 자기확인이었다. 기자 역시 이름 모르는 계곡에서 잠시 쉬면서 까마귀 소리, 부러진 나무, 흐르는 땀, 주변의 웅성거림을 놓고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자기를 잠시 잊었다. 자기정화였다.

산을 내려와 점심을 먹고 시상식 및 행운권 추첨에 참여했다. 단체상, 감투상, 장수상, 최연소상, 화목상, 그리고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박수상 등등. 모두에게 줄 상을 대표로 받은 사람들이 신났다. 기자는 하나도 당첨되지 않았지만, 함께 신났다. 기자 역시 뼈속같이 경희인이었다. 그것을 확인하니 조총장님께서 자주 말씀하신 소통과 화합이 떠올랐다.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소통과 화합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속의 세계적인 명문대학, 이 표어가 서서히 마음 속에 각인되고, 기자가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그려졌다. 도봉산은 산 바깥으로 길을 뻗어놓고 있었다.

강정구(국문88,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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