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김영식(작곡 67) / 추모 음악회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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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김영식(작곡 67) / 추모 음악회를 열자

작성일 2020-08-11

평론가 김영식 추모의 글

추모 음악회를 열자

임춘식 한남대 명예 교수 /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

 

나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로 한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위사람들은 쉽게 시인이자 칼럼리스트로 기억한다. 어쨌든 국문학과 출신이라 운 좋게 시인으로 등단도 했지만 결국 외국에서 사회복지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다 보니 전공을 혼용하곤 한다. 취미삼아 시도 꽤나 썼지만 주로 사회현상에 관한 칼럼이나 사사평론을 주로 쓰곤 했다.

 

그렇지만 흔히 서정적인 시를 주로 쓰는 시인이지만 사회평론 내용은 참으로 깐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시집이나 사회복지 분야의 전공 저서도 몇 권이 있다 보니 독자들이 많이 있는 편에 속한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글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 등으로 힘이 들 때도 가끔 있다. 지우고 지워도 지워지지 않은 아픔도 있다.

 

평론가만큼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 직업도 찾기 힘들다. 굳이 찾는다고 하면 국회의원 정도는 된다. 국회의원은 그래도 부와 명예라도 누리지만 이 직업과 부귀영화의 거리는 '겁나 먼 왕국'수준이니 국회의원보다도 더 열등한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장르를 불문하고 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은 보통 미움 받기 마련이다. 독자들이나 네티즌들에게 얻어맞은 언어의 돌팔매를 생각해 보시라. 무릇 사람들이 평론가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역설하는 것이다. 평론에 대한 혐오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글귀도 더러 있다.

 

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평론가란 대개 영화감독에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음악평론가란 작곡이나 연주자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문학평론가란 작가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출발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 평론가란 무릇 생산의 기생충과 같은 것이다. 슬프게도, 또한 그런 기생충 같은 직업을 밥벌이로 삼고 있다. 여기저기에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명실 공히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인 고인과 평론에 관한 대화를 서슴없이 나눈 기억을 반추한다.

 

고인은 딱히 음악평론가나 작곡가 되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기 때문에 지금도 만성이 되어 그냥 작곡가 아니면 음악평론가라는 직함을 쓴다.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임을 스스로 자임하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때 음악의 세계에 빠진 한 번 사는 인생, 좋아하는 쪽만 파도 후회는 남는다. 왜 음악을 계속하느냐 묻자 고인은 이렇게 말했다. "음악에 중독됐으니까." 음악을 계속 듣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움 받아도 이 일을 관두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론가는 이러한 가치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작품이나 계획에 대해서 그 가치를 분석하고 판단하고 비판할 거리가 있다면 이에 대해 비평하게 된다. 이를 통해 문학이나 영화 작품, 예술 작품 등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는 데에 그 의미가 있지 않는가.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대상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타인에게 설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서로를 위안했다. 평론은 비판이라고 흔히 오해된다. 또 평가만 하면 그만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이 말은 대부분의 비평이 대상의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에 또 그러한 평가 가운데에서 부족한 점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기 때문에 맞는 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평론과 비평의 본질은 이해를 통한 가치평가에 있는 점이다. 가치를 평가하되, 제대로 속속들이 알고 나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 즉 작품과 작가의 구성과 맥락 전체를 읽고, 이러한 이해 가운데에서 도출해낸 자신만의 가치평가를 납득할 수 있게 써내려가는 것이 평론과 비평인 것이다.

 

고인과는 경희대학교 동문 사이로 서울 북부동문회에서 자주 만나 교수라는 직업 때문에 우리 끼리만의 덕담을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문득 생각난다. 더구나 고인이 선배이자 회장이었기 때문에 귀염도 많이 받았다. 그 자상한 성격 그리고 해박한 음악성은 후배들의 선망이 되곤 했다.

 

고인이 그리울 땐 가끔 김영식 추모 음악회 프로그램은 왜 없을까 의문을 갖곤 했다. 추모 음악회는 고인께서 생존 시에 작곡하신 곡들을 모두 들어볼 수 있는 뜻깊은 음악회가 될 것이다. 또한 실력 있는 음악인들의 노래와 공연이 감동을 더해 줄 것이다. 고인의 숨결이 녹아있는 주옥같은 곡들을 불러 후학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선물해 줄 시간이 기다려진다.

 

님의 노래‘, ’청포도‘, ‘내 고향,’ ’그리움등과 같은 아름다운 가곡들을 남긴 작곡가 김영식, 죽은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추모 음악회가 없음이 아쉽다. 하루 빨리 성가합창곡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구원이시니’, 현대합창곡 광야’, ‘오케스트라와 신디사이저를 위한 시조’, ‘목관악기와 피아노, 타악기, 인성, 전자음향을 위한 환상곡등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