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식]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 / 시정칼럼
작성일 2020-12-04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세계적 감염병으로 우리 모두는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견디느라 초긴장 상태다. 비대면 행사들이 있으나 거리가 좀 스산하다. 모두가 묵언수행자마냥 마스크로 입을 봉하고 살아가고들 있다. 요즈음이야말로 종교, 철학, 대중문화예술 등 위로자가 필요하다.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금, 모두가 지쳐가고 한계상황에 와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정치권이 한 마음으로 미래를 위한 논의를 하고 타개책을 찾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다투고만 있다. 한심한 노릇(짓)이다. 이제 샅바싸움을 그만해야 한다.
정쟁과 진영논리 수렁에서 허덕이는 정치 현실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국민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 모두가 문제이다.
최근 들어 가정파괴에 이르기까지 사회병리를 낳은 미친 집값, 정치권에서는 3차 재난지원금 논쟁, 그리고 검찰개혁 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대립도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때문에 국민들은 혼란의 늪에 빠져 있다.
사회 전반적인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개혁의 수술에는 아픔과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생명자체를 죽이는 꼴이 된다. 아픔과 위험을 각오하고 생명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불법이 합법을 가정할 때 우리는 팩트(fact)를 점검한다. 팩트는 잠시 가릴 수 있지만 영원히 덮을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산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는 단정이 팽배해 있다.
지금 진보와 보수의 자각이 필요하다. “도덕성 기준을 세워라" 대 “대안부터 제시하라"로, 서로 싸우고 있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과 대안, 대화와 타협, 절차적 민주주의를 깊이 있게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언론, 대중의 정치혐오와 비판에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국회는 이를 감당해야 한다. 무한책임이 있다. 특히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여당과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적대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두는 상황에 불안하고 짜증스럽다는 부류도 있다. 이게 바로 정치력 부족이다.
지난 역사 속 우리 삶은 한시도 조용한 때가 없었다. 전쟁과 기근, 전염병으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틈서리에 늘 몸살을 앓아왔다. 그때마다 우리는 지혜를 발휘하여 잘 견뎌 오지 않았던가.
어려운 고비를 겪으면서도 이만큼 발전해 왔고, 지금도 선진국 대열에 들기 위해 도전과 응전을 거듭하고 있다. 고통과 고난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굳건하게 견디어온 우리들이다. 시시때때로 찾아온 고난을 우리는 회복탄력성의 정신력으로 견디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을 뿐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것에 사로잡혔을 때, 내 생각 외의 생각, 나와 같지 않은 것은 참을 수 없거나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내가 옳다는 것은 생각일 뿐이다. 안다는 것은 곧 보는 것으로, 보이니까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당신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틀렸다는 자성도 있어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죽는다.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나 카메라의 렌즈나 호수에 비친 모습을 진짜 자기 모습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인은 철학이 없는 국민이라고 한다. 철학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 혼탁한 난세를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 우리는 투철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철학이 없는 생활은 공허하고 빈약하다. 우리는 인생을 바로 사는 지혜로 태연하게 죽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과연 철학적 정신이 있는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 그리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현판에 적힌 글귀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사유한다는 것은 ‘있음’으로 총칭되는 존재를 향한 고민이다. 이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바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우리 모두에게 ‘바로’라는 말이 중요하다. 말도 바로 하고, 생각도 바로 하고, 행동도 바로 하고 생활도 바로 해야 한다. 정치도 바로 하고, 경제도 바로 하고, 교육도 바로 하고,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한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살아야 잘 살 수 있다. 바로 살지 않고는 제대로 잘 살 수 없다.
(한남대 명예교수)
출처 : 시정일보(http://www.sijung.co.kr)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금, 모두가 지쳐가고 한계상황에 와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정치권이 한 마음으로 미래를 위한 논의를 하고 타개책을 찾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다투고만 있다. 한심한 노릇(짓)이다. 이제 샅바싸움을 그만해야 한다.
정쟁과 진영논리 수렁에서 허덕이는 정치 현실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국민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 모두가 문제이다.
최근 들어 가정파괴에 이르기까지 사회병리를 낳은 미친 집값, 정치권에서는 3차 재난지원금 논쟁, 그리고 검찰개혁 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대립도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때문에 국민들은 혼란의 늪에 빠져 있다.
사회 전반적인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개혁의 수술에는 아픔과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생명자체를 죽이는 꼴이 된다. 아픔과 위험을 각오하고 생명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불법이 합법을 가정할 때 우리는 팩트(fact)를 점검한다. 팩트는 잠시 가릴 수 있지만 영원히 덮을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산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는 단정이 팽배해 있다.
지금 진보와 보수의 자각이 필요하다. “도덕성 기준을 세워라" 대 “대안부터 제시하라"로, 서로 싸우고 있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과 대안, 대화와 타협, 절차적 민주주의를 깊이 있게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언론, 대중의 정치혐오와 비판에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국회는 이를 감당해야 한다. 무한책임이 있다. 특히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여당과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적대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두는 상황에 불안하고 짜증스럽다는 부류도 있다. 이게 바로 정치력 부족이다.
지난 역사 속 우리 삶은 한시도 조용한 때가 없었다. 전쟁과 기근, 전염병으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틈서리에 늘 몸살을 앓아왔다. 그때마다 우리는 지혜를 발휘하여 잘 견뎌 오지 않았던가.
어려운 고비를 겪으면서도 이만큼 발전해 왔고, 지금도 선진국 대열에 들기 위해 도전과 응전을 거듭하고 있다. 고통과 고난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굳건하게 견디어온 우리들이다. 시시때때로 찾아온 고난을 우리는 회복탄력성의 정신력으로 견디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을 뿐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것에 사로잡혔을 때, 내 생각 외의 생각, 나와 같지 않은 것은 참을 수 없거나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내가 옳다는 것은 생각일 뿐이다. 안다는 것은 곧 보는 것으로, 보이니까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당신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틀렸다는 자성도 있어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죽는다.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나 카메라의 렌즈나 호수에 비친 모습을 진짜 자기 모습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인은 철학이 없는 국민이라고 한다. 철학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 혼탁한 난세를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 우리는 투철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철학이 없는 생활은 공허하고 빈약하다. 우리는 인생을 바로 사는 지혜로 태연하게 죽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과연 철학적 정신이 있는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 그리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현판에 적힌 글귀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사유한다는 것은 ‘있음’으로 총칭되는 존재를 향한 고민이다. 이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바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우리 모두에게 ‘바로’라는 말이 중요하다. 말도 바로 하고, 생각도 바로 하고, 행동도 바로 하고 생활도 바로 해야 한다. 정치도 바로 하고, 경제도 바로 하고, 교육도 바로 하고,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한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살아야 잘 살 수 있다. 바로 살지 않고는 제대로 잘 살 수 없다.
(한남대 명예교수)
출처 : 시정일보(http://www.sij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