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교수, 데뷔 30주년 맞아

세계적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교수, 데뷔 30주년 맞아

작성일 2025-04-01


세계적 메조소프라노 음악대학 이아경 교수가 데뷔 30주년을 맞이해 기념 콘서트 ‘My Way’를 개최했다.

음악대학 이아경 교수,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My Way’ 개최
학생들 보며 되찾는 초심 통해 더 성숙하는 음악가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흐름은 인생에 비유된다. 봄은 시작, 여름은 열정의 젊은 시절, 가을은 수확, 겨울은 마무리 등의 이미지가 있다. 음악대학 성악과 이아경 교수가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My Way’를 3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 여름과 가을의 사이를 지나고 있다는 그를 만나 데뷔 30주년을 맞이하는 속마음을 들었다. ‘수녀’나 ‘간호사’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꿈꿨던 소녀에서 세계적 성악가로 성장한 이아경 교수의 속에는 후학과 동료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편집자 주>

Q. 성악을 처음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성악을 전공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전공을 더 많이 생각했다. 독일어를 좋아해 관련 학과 진학을 꿈꾸기도 했고, 간호사나 수녀 등의 진로를 고민한 시간이 더 길었다. 피아노도 배웠는데, 피아노 연주보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러던 차에 선생님의 권유로 진해군항제에 나가게 됐다. 성악으로 출전해 2등을 했다. 전문적으로 배우기 전에 상을 먼저 받아 버렸다. 이후에 성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다양한 대학의 콩쿠르에서 1, 2등 상을 받으며 시작하게 됐다.


이아경 교수는 연주자로서 자신이 느낀 감동을 청중에게 그대로 전하며 소통하고 싶다. 사진은 지난 25일 개최된 데뷔 30주년 콘서트 ‘My way’의 연주 모습. 사진 제공 조지석 작가

우연한 계기로 데뷔, 조금 늦은 이탈리아 유학서 6개 콩쿠르 1위
Q.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성악을 시작한 이후 경희대에 입학했다. 입학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의 일이다. 서울에 있는 언니가 대학을 정하기 전에 대학들을 돌아보고 마음에 맞는 대학을 찾아보라고 했다. 입학 전형을 알아보라는 이야기였을 거다. 여러 대학을 둘러봤는데 경희대 캠퍼스에 반했다. 푸른 신록이 우거진 캠퍼스를 보는데 꼭 입학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입시를 같이 준비하던 선생님들은 다른 대학을 추천하시기도 했는데, 경희대에 엄정행 교수님과 같은 대단한 교수님들이 많은 점도 제 마음을 끌었다.

입시 과정에서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험을 보러 왔는데 대부분이 서울 지역의 예술고 출신이었다. 인문계 출신으로 늦게 성악을 시작한 입장에서 감각적으로 다른 학생들과의 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대학 입시를 잘 치르고 입학한 후에도 새롭게 다짐할 계기가 있었다. 선배들이 왜 다른 대학도 갈 수 있는데, 경희대에 왔는지 물은 일이었다. ‘왜 이런 질문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며 오기가 생겼다. ‘내 이름으로 경희대를 빛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대학교 1학년 첫 시험에 전체 학년 중 실기 1등을 했는데, 그 시점부터는 ‘할 수 있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등수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Q. 대학을 졸업할 때도 전체 수석이었다. 성악가로서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는 언제였나.
수석이긴 했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발성 측면에서 완성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이런 마음 때문에 대학 때는 콩쿠르에 나가지 못했다. 대외적으로 학교의 위상을 높이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 인천시립합창단에서 활동했는데, 박수길 국립오페라단장께서 단원 평가 위원으로 오셨다. 평정 중에 저를 발견하시곤 바로 데뷔를 시키셨다. 1995년의 일인데,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메노티의 ‘무당’에서 주역으로 데뷔하게 됐다.

당시에 선배님들께 ‘원석 같다. 외국서 공부하면 더 성장하겠다’라는 식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 2001년에 31세의 조금 늦은 나이로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 이탈리아에 가서 파르마에 계신 원로 음악 코치님을 만났다. 가곡을 준비했는데, 노래 한 곡을 들으시고 나서는 공부한 국가와 배운 선생님을 물으셨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경희대 이훈 교수를 사사했다고 말하니 “이탈리아어 곡을 잘 구사하고 있다. 동양인의 목소리가 아니다”라고 평가해 주셨다.

지금까지도 소통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풀비오 보테가 코치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코칭 이후에 “가서 이기고 와!”라는 응원이었는데, 그 이후 1년 동안 총 6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단독 1위를 했다.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그동안의 공부를 입증했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잘 배우고 있었구나’하는 확신도 생겼다. 아마도 이 시기가 제게 ‘여름’ 같은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음악적 소양을 키우며 수확을 기다리는 시점이었다.

2004년에 국립오페라단 ‘아이다’ 출연차 한국에 왔다가 귀국을 결정했다. 당시에 독일 함부르크 극장의 전속 제안도 받은 상태였다. 유럽의 에이전트도 여러 극장의 러브콜을 확인하고 더욱 말렸는데, 유학 전 한국 무대에서 받은 사랑을 보답하고 싶었다. 성장을 시작한 토양이기에 오래도록 한국 무대에 서고 활동하는 것이 내 길이라 생각했다.


이아경 교수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 6개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한 이후인 2004년 국립오페라단 ‘아이다’ 공연을 이후로 귀국을 결정했다.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보답하고 싶었다”는 그는 이후 모교로 돌아와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학생 빛내주려는 소명 의식, “교수이자 선배로서 모범될 것”
Q. 한국 복귀 후 2010년 모교의 교수로 임용됐다. 당시의 다짐이나 목표는 무엇이었나.

성장한 환경을 이야기해야 한다. 음악적 환경에서 크지 못했다. 성악가가 될 것으로 생각한 가족들도 없었고, 개인적으로도 단순히 노래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악가, 교수가 목표도 아니었다. 그저 지식과 능력을 제공해 조력자로서 학생들을 빛나게 해주려는 소명 의식 정도가 있었다. 대학 교수가 됐을 때 나와 같이 기반이 없고, 한국서 성장하고 공부한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모범사례가 되고 싶었다.

어떤 분들은 내가 걸어온 길을 엘리트의 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걸었다. 대학 수석 졸업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받은 결과다. 1등이 목표가 아니었다. 대학교수도 목표가 아니었고, 길을 걷다 보니 기회가 주어졌다. 학생들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누며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너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최근에는 학생들이 현실적 문제를 일찍 느끼고 빨리 좌절한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나도 그랬는데, 열심히 하면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더라’라고 말이다. 내 성장 과정을 봐도 그렇다. 대학교 4학년 때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합창단에 들어갔다. 합창단서도 열심히 했다. 그 과정에 등급도 올랐고, 우연한 기회로 데뷔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엄정행 선생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런 도움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교수로서 나 또한 이런 조력자가 되고 싶었다.

Q. 데뷔 30주년 콘서트의 제목이 ‘My way’다. 지금껏 걸어온 길을 요약하는 자리다. 30주년을 맞이하며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이 있는지 궁금하다.
음악가는 시간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논문은 시간을 들여 서론과 본론, 결론의 정제된 상태로 공개된다. 하지만 음악은 청중과 함께 숨 쉰다. 음악에 공감하는 청중이 형성돼야 한다. 이번 콘서트는 나의 성장을 지켜봐 주신 분들, 처음 알게 된 분들을 위한 자리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이 이런 모습입니다’라고 설명하려 했다. 앞으로 2~30년을 노래할 수 있을지, 학생을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콘서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

100세 시대로 생각을 해보면 이제 중간을 넘었다. 음악에서도 중간 정도는 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보다도 더 성숙할 수 있다. 목소리 건강 측면에서는 노화가 올 시기는 지났다. 보통 50세 이후면 목소리의 탄력이 떨어진다. 다행인 점은 학생을 가르치며 초심으로 돌아갈 때가 있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교육과 내 연구의 방향성을 환기하고, 꾸준히 발성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데뷔 30주년이 되니 풍경도 달라졌다. 가르친 학생들이 제자를 맞이하고, 나도 새로운 제자들을 만난다. 또 다른 인생의 서막을 연달까, 책임감이 더 많아진다. 오히려 제자들을 통해 보람을 얻고 있다. 콘서트에도 이런 마음을 담았다. 내가 부르고 싶은 곡보다 주변인들에게 듣고 싶은 노래를 물었고, 그렇게 연주 목록을 정했다. 관객들과 편안히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듯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이아경 교수는 제자들에게 “지치지 말고 오래도록 음악해”라고 말한다. 오래도록 성실하게, 정직하게, 서로를 믿으며 음악할 것을 강조한다.

“내가 느낀 영혼의 울림 청중에게 그대로 전해지길”
Q. 향후의 목표는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꿈을 묻곤 한다. 해외로 나가 세계 무대에 서는 꿈, 5대 극장에 빨리 서는 꿈 등 꿈이 많다. 내 목표를 생각해 보면 대학에 있는 동안 꼭 필요한 사람이면 좋겠다. 대외적으로 연구자로서 책임감 있고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도움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대학에서 가르친 학생들이 국내외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데뷔해 활동하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기다. 함께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경희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융화해야 한다. 선배로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성악 분야가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성악가 이아경’이란 이름을 스스로 잘 지키면 후배들을 위한 장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원하는 순간이 있다. “노래가 감동적이었다. 뭉클했다”와 같은 말을 들을 때다. 화려한 장식을 더하기보다는 한 소절이나 한 마디를 진심으로 했을 때 벌어지는 광경이다. 내 목소리와 감정이 왜곡되지 않고 청중에게 순수한 울림으로 전달됐으면 한다. 음악은 받는 분들이 그 모양을 만든다. 내가 느낀 영혼의 울림을 청중들에게 전달하고 각자의 모양으로 기억된다. 음악 안에서 음악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다. ‘생활 속에 녹아든 음악’을 하고 싶다.

Q. 후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항상 “지치지 말고 오래도록 음악해”라고 말한다. 자질과 음성은 타고나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노력이다. 언어, 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완성도를 높이기 어렵다. 열린 시야와 마음이 필요하다. 오래도록 성실하게, 정직하게, 서로를 믿으면서 음악을 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한다. 대학 생활을 열심히 해야 사회인으로서 역할도 톡톡히 할 수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지만, 전공자로서 전공을 기반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오래도록 연구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학생 중 다른 음악 장르에 흔들리는 학생도 있다. 물론 그 분야가 맞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교육자의 눈으로 봤을 때, 지금은 아니어도 곧 영글 아이들이 있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일희일비하지 말고 너는 늦더라도 이 길을 걸어갈 사람이다’라고 조언한다. 음악을 하다 에고(ego)가 생기면서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많다. 나 혼자만의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목소리, 연주에 귀 기울이면 좋겠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