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021 경희 75주년, 서울캠퍼스 70주년, 국제캠퍼스 45주년 맞아
‘세계는 지금 조난당한 파선’ 75년 전 경희가 가진 문제의식
시대와 역사 성찰하면서 전일적·전환적 사유 세계 펼쳐
개인과 사회, 세계와 미래에 기여하는 경희의 전통 확장
경희가 올해 설립 75주년을 맞았다. 서울캠퍼스 시대 개막 70주년이자 국제캠퍼스 설립 45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1949년 설립된 경희는 이듬해 한국전쟁 발발로 피란길에 올랐고, 전란 중인 1951년 부산 동광동에서 첫 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1954년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후, 지금의 서울캠퍼스를 건설했다. 1979년의 국제캠퍼스 건설도 그 연장선에서 추진했다. 이에 따라 대학의 명확한 비전이 캠퍼스에 반영됐다. 경희는 ‘세계적인 대학’, ‘세계로 웅비하는 경희’라는 목표 아래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며 ‘경이로운 경희’의 역사를 써내려 왔다. 5월 18일 개교기념일을 맞아 경희정신과 역사, 미래비전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경희 서사의 시작, 시대의 위기를 넘어서고자 했던 꿈과 희망
경희는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격동기, 이념과 체제의 극한 대립 상황에서 탄생했다. 그 시대와 역사를 성찰하면서 기성의 이념과 체제, 국가와 민족을 넘어 인류의 보편가치를 추구하고, 평화와 공영의 활로를 모색했다. 이는 경희정신의 모태가 된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의 저서 『문화세계의 창조』(1951년 5월 18일 발행)에 담겨있다. 설립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세기는 새로운 정치 이념을 필요로 한다. 세계는 지금 조난당한 파선(破船)! 창망한 바다 한가운데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묘안과 창의적인 방안을 찾지 않는 한 침몰은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시대의 위기를 넘어서고자 했던 꿈과 희망이 경희 서사의 시작이다.
경희가 추구해 온 ‘문화세계의 창조’는 인간의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 전일적(Holistic) 사유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미래사회를 향한다. 경희는 인간이 쌓아 올린 이념과 편견의 장벽을 넘어 평화로운 인간의 인간적인 세상을 열어가자는 사유 세계를 펼쳤다. 모든 것의 초연결성과 교호(交互) 작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의지적, 의식적 노력이 만들어 내는 창조적 가능성을 포괄한 전일적, 전환적 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유 세계와 함께 주어진 시대의 난제를 돌파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인류의 책무이자, 권리를 강조했다. 경희의 오랜 전통인 ‘학문과 평화’, 평화의 전당에 새겨진 ‘인간에겐 사랑을, 인류에겐 평화를’이란 문구는 그 정신을 함축한다.
경희정신은 교시, 교명, 교가 그리고 경희의 역사에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1960년 3월 1일 개명한 교명 ‘경희(慶熙)’는 객체와 주체, 양과 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생성의 법칙과 일원론적 우주관을 함축하고 있다. 광활한 우주에 던져진 왜소한 인간의 전환적 사유와 함께 ‘인간의 문화세계’를 창조해 보자는 소망을 담고 있다. 경희의 교가는 “온오한 학술연구 온갖 노력 바치고 변전하는 세계의 진리를 연구하여··· 인류 위해 일하고, 평화 위해 싸우세”를 노래한다.
학술 탁월성 기반으로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적인 대학’을 향해
설립자는 저서 『문화세계의 창조』를 탈고한 1951년 5월 18일 성재학원과 신흥초급대학(가인가 2년제)을 인수했다. 이날이 경희의 개교기념일이다. 이 재단과 대학은 1949년 설립됐다. 경희가 개교의 원년을 1949년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재학원과 신흥초급대학은 한국전쟁 발발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란한 뒤 학교 문을 열 형편이 되지 않아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희는 1951년 8월 20일 부산 동광동 임시 교사에서 입학식을 개최하고, 새 출발을 알렸다. 이날 교훈 ‘학원의 민주화, 사상의 민주화, 생활의 민주화’도 발표했다. 1952년 12월 9일에는 4년제 정규대학 설립 인가를 획득한 데 이어 종합대학교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1953년 1월, 화재로 교사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그해 봄, 부산 동대신동에 교사를 다시 건립했다. 1953년 3월에는 첫 학위수여식을 거행했다.
그해 7월 정전 협정이 체결됐다. 부산에 피란 온 대학들이 서울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경희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서울 환도는 큰 결단이 필요했다. 부지 물색과 캠퍼스 건설 등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고난의 길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경희의 새 미래를 건설하는 희망의 길이기도 했다. 설립자는 천장산(고황산) 일대 30여만 평의 교지를 확보한 후 ‘100년 후 경희, 세계적인 경희’를 그리며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캠퍼스 건설에 착수했다.
경희는 1954년 3월 24일 서울 회기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했다. 건물은 3동 12교실의 임시 교사(450평 목조건물, 현 문과대학 자리)를 비롯해 임시 사무실(현 중앙도서관 옆 봉수대 자리), 대학원관(현 신문방송국 건물)이 전부였다. 당시는 휴전 직후로 한반도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70달러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세계 최빈국의 신생 대학, 경희가 처한 상황이었다. 부산 동대신동 신교사를 지은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재정적 난관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경희는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문(등용문), 교시탑, 본관 석조전, 중앙도서관, 평화의 전당 등 핵심 건물이 처음 설계한 그 모습 그대로 건설됐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신생 대학이 겪게 마련인 고난에도 경희는 국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한 미래를 꿈꿨다. 설립자는 1954년 5월 20일 학장 취임식에서 “어떤 특정 대학을 따라서 대학을 만들고 싶지 않다. 한국의 어느 대학보다도 동양적이고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지금보다 백배, 천배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경희가 지향하는 ‘세계적인 대학’의 의미는 설립자가 남긴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보내는 메시지(이하 미래메시지)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1964년 10월 2일 개교 15주년 기념 9회 학원제에서 발표된 이 메시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이로운 경희’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바탕이 된 경희정신을 되새기고, 최후의 목표가 ‘세계적인 대학 건설’에 있다는 담대한 포부를 전한다. 아울러 후학들에게 “‘세계적인 대학 건설’이라는 큰 목표가 현명한 여러분들에 의해서도 계속 추진됨으로써 학술 발전을 통한 인류의 문화 향상과 복리 증진, 나아가서는 세계평화 건설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는 경희의 목표가 탁월한 학술의 미래를 선도하는 대학 본연의 책무와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실천적 책무를 아우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 목표와 지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화세계의 창조’와 ‘학문과 평화’의 가치, 지구사회로 확산
경희는 재단과 대학을 인수한 지 10년 만에 일관 교육·학술 체제를 구축했다. 경희중·고등학교(1960년)에 이어 경희초등학교(1961년)와 경희유치원(1961년)을 설립했다.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교육의 전 과정을 일관된 체제로 묶어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학원(學園)을 설립한 것이다. 이후 경희사이버대학교(2001년), 경희의료원(1971년), 강동경희대학교병원(2006년), 후마니타스 암병원(2018년)을 설치·운영하며 교육·학술·의료기관을 아우르는 종합학원 체제를 갖췄다.
경희는 1961년 종합학원 설립 후,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65년 인수한 동양의과대학을 바탕으로 의학, 한의학, 치의학, 약학, 간호학을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종합 의학 계열 체계를 구축했다. ‘질병 없는 인류사회’를 위한 노력은 1971년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경희의료원을 개원하기에 이른다. 1979년에는 53만 평 규모의 국제캠퍼스 설립을 인가받고, 인문사회, 의학, 기초과학, 예술 중심의 서울캠퍼스, 공학, 응용과학, 국제학, 현대예술, 체육 중심의 국제캠퍼스, 평화학 센터로서의 광릉캠퍼스 체제를 구축했다. 1984년 설립된 광릉캠퍼스 평화복지대학원은 1993년 대학으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평화교육상을 수상했다.
유네스코 평화교육상 수상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경희의 노력을 인정받은 배경에는 설립 초기인 1950년대부터 추진해 온 평화·학술·교육·의료 활동이 있다. 경희는 농촌운동과 자연보호운동, 밝은사회운동, 인류사회재건운동, 네오르네상스운동,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시대와 국가사회가 초래한 인도적·지구적 난제 해소를 위한 노력을 거듭했다. 각종 국제 학술회의를 주도해 위기에 처한 세계를 직시하면서 교육을 통한 평화 구현 노력도 지속했다. 1965년 세계대학총장회(IAUP) 창립, 1981년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에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은 경희의 학문과 평화 운동이 지구사회 차원으로 확장된 상징적 결실이었다.
평화교육상 수상 이후에도 경희는 서울 NGO 세계대회 개최(1999년), 사이버대학교 설립(2001년), 세계시민포럼·세계시민청년포럼 개최(2009년), 후마니타스칼리지 출범(2010년), 세계대학총장회 창립 50주년 기념식 공동 개최(2015년), 미래문명원 체제 출범(2021년)의 역사를 써왔다. 경희가 추구해 온 ‘문화세계의 창조’와 ‘학문과 평화’의 가치를 세계시민사회와의 관계성 속에서 구현해 나가고 있다.
한국전쟁 중에 태동한 경희는 그 시대 상황을 ‘만경창파(萬頃蒼波)와도 같은 살풍경(殺風景)’, ‘창망한 바다 한가운데서 구원을 기다리는 조난당한 파선’으로 인식하고, 인간의 인간적 세상, 전일적 사유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위기의 시대, 그 혼돈 속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찾아 나선 것이다. 당시의 문제의식과 해결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더 나아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전일적 안목에서 전환 의식을 고양하고, 시대의 난제를 해소하는 일에 도움이 될 사회, 문화, 의식 차원의 저변을 마련해야 할 때다. 경희는 시대의 위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돌파 의지를 키워온 역사와 전통, 가치와 철학을 계승·발전해 문명사적 전환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 학술, 실천, 의료 분야의 탁월성 추구를 축으로 개인과 사회, 세계와 미래에 기여하는 경희의 전통을 더욱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경희 75주년 슬로건
‘전환의 시대 경희의 도전 Towards Lux Mundi’
경희가 5월 18일 개교기념일을 맞아 75주년 슬로건 ‘전환의 시대 경희의 도전 Towards Lux Mundi’가 새겨진 거리 배너를 서울, 국제, 광릉캠퍼스에 건다. 경희는 75주년 슬로건과 함께 올해 유엔 세계평화의 날(9월 21일) 행사 기간에 첫 시상식 개최를 목표로 추진 중인 미원평화상 슬로건을 정했다. 미원평화상 슬로건은 ‘인간에겐 사랑을 인류에겐 평화를 Towards Lux Humanitas’다.
Lux Mundi(룩스 문디)와 Lux Humanitas(룩스 후마니타스)는 라틴어로 ‘세계의 빛’, ‘인류애를 향한 빛’을 의미한다. 두 표어 모두 ‘문화세계 창조’를 향한 책무 속에서 인간의 정신과 실천 세계의 조화를 추구해 온 경희의 설립정신을 표상한다. Lux Mundi는 국제캠퍼스 사색의 광장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문구이기도 하다. Lux는 ‘빛’을 뜻하고, Mundi는 ‘세계’ 또는 ‘우주’를 뜻하는 Mundus(문두스)에서 유래했다. 전환의 시대, 문명사적 위기를 넘어 온누리를 다시 밝힐 새 빛의 창조를 향한 염원을 담았다. Lux Humanitas는 우주질서 안에서 평화와 공영의 지구공동사회를 찾아나서는 인간적 지혜와 실천을 상징한다.
경희는 학문과 평화의 ‘지구적 존엄(Global Eminence)’을 위해 노력해 왔다. 평화의 전당에 새겨진 ‘인간에겐 사랑을, 인류에겐 평화를’이란 문구가 말하듯이 경희는 인류의 미래, 평화의 미래를 탐색해 왔다. ‘경희의 미래 인류의 미래 Towards Global Eminence’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문화세계의 새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