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책방’ 여는 김기태 세명대 교수(국문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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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책방’ 여는 김기태 세명대 교수(국문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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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과 창간호 수집하는 저작권학자
[단비인터뷰] ‘처음책방’ 여는 김기태 세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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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후문 근처에 자리 잡은 ‘처음책방’에서 김기태 세명대 교수가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나종인 


지난 4일 찾아간 ‘처음책방’은 개업 준비로 부산했다. 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대학교 후문 근처에 자리 잡은 책방 곳곳에는 아직 책장에 자리 잡지 못한 수백 권의 책이 쌓여 있었다. 각종 단행본의 초판본, 수많은 잡지의 창간호 등이었다. ‘처음책방’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나왔다. 처음 세상에 나온 종이 출판물만 모아둔 책방이라는 뜻이다. 

책방 주인은 김기태(59)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다. 대학시절 문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이후인 1988년부터 삼성출판사에서 잡지와 책을 편집하는 출판 기획자로 일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책을 수집하는 일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약 30여 년 동안 각종 단행본 초판 1쇄본 5만여 권, 일간·주간·월간·계간 등 여러 정기간행물 1만5천여 권을 수집해왔다.


출판 기획자로 일하면서 저작권 관련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얻은 그는 2001년 세명대학교에 부임했다. 그동안에도 책 수집은 계속되어, 연구실은 물론 친척의 사업장 마당에 들여놓은 대형 컨테이너를 채울 정도가 됐다. 출판 편집·기획과 저작권 등을 강의한 교수 생활 20년이 지난 2022년, 이제 그는 그 책들을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보관해온 책과 잡지를 보여주고, 원하는 이들에게 판매하는, 전시와 서점을 겸하는 문화 공간을 꾸미고 있다. 4월 즈음에는 정식 개점할 예정인데, 정확한 시기는 미정이다. 모아둔 책이 너무 많은 것이다. 서점 건물 옆으로 옮겨둔 컨테이너에도 미처 분류하지 못한 책이 가득하다. 김 교수는 “언제 다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처음 만든 책, 처음 모은 책

김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나고 자랐다. 강화도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했던 조선 왕실의 외규장각이 있던 곳이다. 고려 시대의 문장가 이규보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책과 깊은 연관이 있는 강화도에서 김 교수는 어릴 때부터 친척이 운영하는 고물상에 쌓인 헌책을 읽었다. 책과 문학이 좋았던 그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며 문학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를 꿈꿨다. 그러나 김 교수의 첫 직장은 학교가 아니라 출판사였다. 이러저러한 계기로 교육현장에 대한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때마침 삼성출판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취업했다. 국내 출판계의 황금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 자유화와 함께 출판 시장도 커졌다. “1980년대와 90년대가 한국에서 출판물이 가장 많이 나오던 시기였다”고 김 교수는 당시를 회상했다.


출판기획자가 된 그는 3개월의 수습 과정을 거친 뒤부터 곧바로 책 편집 작업을 맡았다. 작가와 연락하고, 글의 구성을 바꾸고, 오탈자를 바로잡았다. 당시 도입 초기였던 전산사식 회사와 인쇄소까지 두루 다녔다. 석 달 동안 밤낮없이 일하여 <신세대 소설선>을 출간했다. 김 교수가 편집 담당자로서 처음 세상에 내놓은 책이었다. 책 한 권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시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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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교수가 <뿌리깊은나무>의 창간호와 종간호를 ‘처음책방’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뿌리깊은나무>는 1970~80년대의 지식인에게 인기가 많았던 당대 최고의 월간지다.  나종인

첫 책을 냈다는 기쁨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서울 청계전에 있는 헌책방에서 <뿌리깊은나무> 초판본을 만났다. <뿌리깊은나무>는 한국 브리태니커가 1976년에 창간한 월간잡지다. 주로 문학과 시사를 함께 다뤘는데, 당시로서는 드물게 순 한글을 가로쓰기로 편집하여 지식인과 대중 모두에게 인기 있었다. 김 교수는 <뿌리깊은나무> 초판본을 보며 책을 만들 때의 열정을 떠올렸다. 이때부터 각종 출판물의 초판본과 창간호를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


6만 5천 권에 담긴 한국 현대사

초판본과 창간호에는 그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기태 교수가 처음 수집했던 <뿌리깊은나무>에는 군부독재 시절의 상흔이 남아 있다. 1980년에 나온 종간호에는 종간사가 없다. 표지에는 미륵보살 사진이 실려 있는데, 마지막 호의 표지라고 보기에는 밋밋하다. “잡지 안에도 종간한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갑자기 폐간당한 거지요. 전두환의 언론 통폐합 때문이었어요. 자비로운 이 미륵보살 사진을 실어놓고 폐간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김 교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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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교수의 애장품인 소설 <광장>의 초판본이다. 소설가 최인훈은 평생에 걸쳐 <광장>을 개작했다. 김 교수는 초판본과 개정본을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초판본을 읽는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나종인

수집한 단행본 가운데 김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박완서의 <나목> 초판본(1970년)과 최인훈의 <광장> 초판본(1961년)이다. <나목>은 박완서 작가의 등단작으로 당시 여성동아 공모전 당선작이며, 김 교수가 소장한 것은 정식 단행본이 아니라 여성동아 별책부록으로 발행된 것이다. 그 초판본은 활자로 한 글자씩 조판하여 인쇄했다. “활자로 조판한 책은 컴퓨터로 편집 인쇄한 요즘 책과는 느낌이 다르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담은 최인훈의 <광장>은 한국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그런데 김 교수는 남들은 잘 모르는 재미를 이 소설에서 찾았다. “최인훈 작가는 <광장>을 평생에 걸쳐 개작했어요. (초판본에서)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나, 독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대목을 좀 더 선명하게 표현하려고 계속 고쳐 쓴 거죠. 그러니 초판본을 개정판하고 비교해 읽어보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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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교수가 ‘처음책방’ 진열대에 올려진 월간 <현대문학>을 보여주고 있다. 1955년부터 발행한 이 월간지에 한국 현대문학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나종인

김 교수가 아끼는 정간물 컬렉션 가운데는 월간 <현대문학>도 있다. 1955년 창간호부터 1965년에 나온 10주년 기념호까지 모두 120권을 소장하고 있다. <현대문학>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예지다. 수십 년 동안 박경리, 최인호, 조정래 등 600명이 넘는 문인들이 기고했다. 그만큼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창기 10년 동안 게재된 글을 모두 스캔해서 (자료가 필요한) 연구자한테 제공할 생각”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주목할 만한 신문도 꾸준히 모았다. 국민주 신문으로 탄생한 <한겨레신문>의 창간 주주였던 김 교수는 <한겨레신문> 창간호도 소장하고 있다. LG상남언론재단이 펴낸 <6.25 전쟁기간 4대 신문 영인본> 초판본도 소장하고 있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가 전쟁 기간에 보도한 기사를 모두 담았는데, 사료적 가치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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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10월에 나온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 창간호. 이 잡지는 1960년대에 끊어졌던 만화잡지의 명맥을 이었고, 1996년 폐간될 때까지 유명작가들이 만화를 연재했다.  나종인

김 교수가 모은 단행본과 정기간행물의 분야를 이 기사에 열거하기는 불가능하다. 저자인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적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관련 서적 및 <김영삼 회고록>과 <김대중 옥중서신> 국내외 도서 초판본, “많은 사람의 손을 타는 만화책이 이 정도로 보존된 경우는 드물다”고 스스로 자랑할 정도로 상태가 좋은 <보물섬>·<콜롬보> 등 만화책 초판본, 그리고 여러 종류의 옛 여행도서와 성인잡지까지 ‘처음책방’의 책장에 진열돼 있다.


종이책 수집이 더 좋은 저작권 전문가

김 교수의 종이 출판물 수집은 그저 재미로 시작한 일이 아니다. 출판사에 다니던 시절, 그는 국내에 저작권 전문가가 희귀하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1994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저작권 관련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때 저작권으로 학위가 나왔다고 언론의 조명을 받았어요. 석사만 받았는데도 강의 요청이 쇄도했지요. 강의하며 돌아다니는 보따리상이 됐죠.”

이때부터 그는 더욱 본격적으로 출판물을 수집했다. 광주, 부산, 대구, 대전 등 전국 헌책방을 돌며 초판본을 수집했다. <광장> 초판본이 있다는 소식에 부산 헌책방까지 일부러 찾아갔고, 저작권 자문을 위해 서울 출장을 가면 서울시가 헌책방을 모아 조성한 문화공간인 ‘서울책보고’에 반드시 들렀다.

2000년에는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 3월 세명대학교 교수가 됐다. 이후 지금까지도 대한출판문화협회 저작권 자문위원, 한국저작권위원회 표절위원회 위원 등 저작권 전문가로 폭넓게 활동했다. 세명대가 위치한 제천에 문화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제천 음악영화제’ 창설에 참여했고, ‘어린이를 위한 기적의 도서관’ 설립에도 힘을 보탰다. 그 와중에도 출판물 수집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헌책 커뮤니티를 통해 책을 구한다. ‘처음책방’의 문을 여는 것은 책에 바친 김 교수의 30여 년 인생의 이정표인 셈이다.


변함없는 가치가 있는 곳, '처음책방'

짧게는 몇 초부터 길어도 10분 이내에 감상할 수 있는 ‘쇼트폼(short form) 콘텐츠’가 유행하는 디지털 시대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에서 길고 심심한 종이 간행물을 모으는 것은 부질없는 행동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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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교수가 ‘처음책방’에 진열된 자신의 소장품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곳에 한국 현대사가 모여 있다고 말했다.  나종인

이런 의문에 김기태 교수가 답했다. “책은 읽는 것이고, 디지털 매체는 보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필요한 것만 발췌한다는 뜻이고,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을 보고 사유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편리하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매체가 유용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매체는 오히려 사람의 사유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반면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끊임없이 내용과 씨름하며 생각을 발전시킨다. 김 교수는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두 매체를 적절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종이 출판물을 수집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음악이 디지털을 만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됐지만, 여전히 구식 레코드와 턴테이블을 찾는 이들이 있다. 종이책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의 시대에도 종이의 감성과 활자의 이성을 찾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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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에서 바라본 '처음책방'의 모습이다. 김 교수는 3월에서 4월 사이에 소장품 정리가 끝날 것으로 내다봤다.  나종인

그 꿈을 담은 서점을 4월 이전에는 열 생각이다.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열어볼까 생각 중”이라며 김 교수는 웃었다. ‘처음책방’은 수많은 출판물의 초판본과 창간호를 구경할 수 있고, 원한다면 구매할 수도 있고, 출판과 저작권에 관해 공부할 수도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요즘 김 교수가 바라는 건 ‘입소문’이다. 소문을 타고 ‘처음책방’에 찾아온 이들이 책을 통해 과거를 만나고, 종이의 감성과 이성에 길들고, 마침내 깊이 사유하는 것. 겨우 내내 수만 권의 책을 정리하면서 서점을 꾸미는 김 교수가 다가오는 봄에 바라는 일이다. 


편집 : 이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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