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장성구-공정한 사회와 공정한 의료
▲장성구(의학71, 전 경희대병원장, 총동문회 이사)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고 성취하고자 한다면 먼저 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직종이나 지역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전제돼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들이 얼마 전 `공정한 사회, 공정한 의료`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철학자, 법학자, 경제학자, 행정전문가, 의료인 등 다양한 사람들로 같은 구심점을 찾고자 분야별로 깊이 있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공정`이라는 사회적 정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공정이라는 말은 아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기회의 공정성이나 분배의 공정성은 물론이거니와 정도 면에서도 제한적 범위의 공정성이냐, 아니면 무한대의 공정성이냐를 따져야 한다. 공정한 대접을 받고자 하는 국민 개개인의 추구하는 정도와 요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에 대한 의료의 공정성은 오늘날 국가 사회에서 필수적인 것이며, 의사들로서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료의 공정성이 추구하는 것이 기회의 공정성인지, 아니면 질의 공정성인지에 따라서는 아주 첨예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에 따른 `공정`이라는 뜻이 갖는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 토론회에서 철학자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단층적 구조를 가진 의료체계가 과연 공정 사회인가 하는 문제를 갖고 많은 고심을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에 대한 철학적 견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 `공정한 사회`를 선언했을 때 스스로 가슴 속 깊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회적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자칫하면 과거 우리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무수한 괴로움을 주었던 포퓰리즘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공정이란 모든 것은 같아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국민 마음을 지배할 때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혼돈을 격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 언급했듯이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의료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 요구를 추정해 보건대 아마도 기회의 공정성과 의료의 질적인 균등성의 공정함을 요구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의료계의 많은 기여와 희생 속에 성장한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서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기본적 보건의료 제공의 공정성은 상당한 접근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모든 사회적 요구나 국민적 요구에 기회의 균등성이나 공정성이 어느 정도 성취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은 국민이 개인적 욕구를 추구하는 현상이 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질병에 대한 실질적인 사보험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는 보험 상품 출현이라든가, 우리나라 임상의학 수준이 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평하면서도 질병 치료를 위해 외국으로 출국하는 현상 등이 그 증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의료의 사회적 공정성에 또 다른 문제점으로 부각될 것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단층적 의료구조 체계로는 극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공정성이 인정되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다층적 의료구조를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의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사회적 제도 또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의료에 관한 사회적 제도는 의학의 학문적 발전에 동력을 제공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의학 발전을 통한 고품격 의료가 사회적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갖고 국민에게 제공될 때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학 발전의 진정한 수혜자는 바로 국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1. 1. 3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