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상봉 제의 웬일인가 했더니…


동문특별강좌 이진곤-상봉 제의 웬일인가 했더니…

작성일 2010-09-28
▲이진곤(정외69, 국민일보 논설고문, 총동문회 사무총장)

추석이 지난 지 여러 날인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기약이 없다. 북한이 웬일로 먼저 제의하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속셈이 따로 있었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조건으로 내밀었다는 보도다. 그러잖아도 덧나고 덧난 이산가족들의 상처가 다시 헤집어졌다. 그 고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애처롭기 그지없다.

돈으로 평화를 살 수는 없다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남북관계 개선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대북 쌀 지원의 필요성도 거듭 역설했다. "농촌도 살리고, 우리 자원도 살리고, 안보도 살리기 위해서는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에 최소한 40만~50만t의 쌀 지원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 면서 과감하고 감동적인 대북 쌀 지원을 강조했다고 한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불리는 박 대표다. 그로서는 당연한 요구일 수가 있다. 박 대표를 비롯한 햇볕정책 옹호론자들의 주장 또한 한반도의 평화, 우리 국민의 안전, 민족의 공동 번영을 위한 충정의 발로라고 믿는다. 굳이 못 믿겠다고 할 까닭이 있을 리 없다.

문제는 화해·포용의 방법이다. 금강산 및 개성 관광이 남북관계 개선과 이산가족 상봉, 한반도 평화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준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북한 당국자들이 가끔 웃는 표정을 지었던 것은 아마 돈 때문이었을 터이다. 박 대표의 말도 그런 느낌을 준다. 돈을 주면 북한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뜻으로 들려서 하는 말이다.

돈을 줘서 북측의 신의와 영속성이 있는 대남화해정책을 얻어낼 수 있다면야 그것도 한 방법일 수가 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돈으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산 예가 있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우리의 경험 또한 다르지 않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돈을 줄수록 한반도의 군사적 불안정성은 커진다. 우리가 남북정상회담이나 금강산 및 개성관광 대가로 거액의 달러를 준 이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은 되레 가중됐고 무력도발의 빈도와 정도도 심해졌다.

우리 돈이 직접 쓰이지 않았다거나, 우리가 돈을 주지 않았더라도 저들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실험했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를 둘러싼 논쟁은 무의미하다. 달러 자체가 전략물자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40만~50만t'의 쌀을 '즉각' 북한에 보내야 한다는 말도 귓전에 좀 걸린다. 그 며칠 전 그는 북한이 비축한 군량미가 "한국에서 보낸 쌀은 아닐 것"이라고 북측 역성을 든 바 있다. 비축의 여력을 만들어주긴 했을 텐데도 거기에 생각이 안 미쳤거나 아니면 간과한 듯 쌀 보내라는 요구만 거듭한다. "쌀은 중요한 안보자원"이라고 강조했을 양이면 대북 쌀 지원의 조건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보수 측은 북한의 이쪽에 대한 무신의를, 진보 측은 이쪽의 북한에 대한 불신을 비판한다. 양측 모두 진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딴소리다.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긴 바가 없다. 공공연히 협박하고 요구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약속이나 보장도, 저들은 하지 않는다. 다만 요구할 뿐이다. 이것이 상황의 진실이다.

남·북한이 민족공동체인가

문제는 우리 쪽에도 있다. 우리는 민족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국가체계(그것도 북한과 무력대치 중인)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사실을 너무 자주 망각하거나 혼동하는 탓에 끝없는 논쟁과 갈등을 겪으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북한은 분명하고 철저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민족도 주민도 아니다. 오직 세습·전제 체제의 존속과 강화만이 유일한 과제이고 목표다.

대가 지불도 좋고 경제 지원도 좋다. 다만 '민족끼리'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로서 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한 손으로는 지원 금품을 받아가면서 다른 손으로는 이쪽의 뺨을 치는 상황, 이를테면 세 차례에 걸친 서해 도발, 민간인 관광객 살해, 해군함 어뢰공격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2010. 9. 28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