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형우-‘그림의 떡’ 황반변성 치료제


동문특별강좌 곽형우-‘그림의 떡’ 황반변성 치료제

작성일 2010-09-13
▲곽형우(경희의료원 안과 교수)

10년 전의 일이다. 망막의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에 출혈이 일어난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환자는 눈에 검은 달이 떴다는 말로 증상을 표현했다. 초기에는 노안처럼 눈이 침침하고 사물이 흐릿해 보이다가 몇 달 전부터 똑바른 직선이 휘어 보여 외출을 삼가고 있다고 한다. 급기야 몇 주 전부터 시야의 중심에 검은 보름달과 같은 암점이 생겨 사람의 얼굴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 환자는 습성 황반변성 진단을 받았고, 이는 실명 선고를 의미했다.

망막은 우리 눈에서도 사물의 상이 맺히는 중요 부위다. 그중에서도 ‘황반’이라는 망막의 중심 부위는 빛을 감지하는 세포가 밀집돼 전체 망막 부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황반이 제 기능을 잃으면 시력을 잃는다.

황반변성은 노폐물로 인해 두터워진 망막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자라난 혈관이 ‘황반’ 부위를 침범해 생긴다. 신생 혈관은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 약한 혈관이라 누수가 생기고 출혈이 쉽게 일어난다. 10년 전에는 치료방법에도 한계가 있었다. 주로 레이저나 광역학 요법이 쓰였는데, 자라난 신생 혈관을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하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환자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한번 환자가 찾아오면 레지던트·인턴을 모아놓고 환자의 검사 결과와 차트 등을 공부시키곤 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황반변성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수가 10년 전에 비해 급격히 늘었다. 많아 봐야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볼 수 있던 황반변성 환자가 이제는 이틀에 한 명꼴로 병원에 온다. 얼마 전 경희의료원·강남성심병원·삼성서울병원의 환자차트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0년 전에 비해 전체 환자 수가 7.4배 늘고, 40~50대 환자는 9배나 늘었다. 다행히 2007년에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인 ‘루센티스’가 개발돼 2009년부터 보험이 적용됐다. 1회 투여에 100만원을 웃돌던 약값이 국가의 보험 지원으로 이제 환자 본인은 약값으로 10여만원만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이 주사 치료는 한 달에 한 차례씩 3회 투여 후 필요한 경우 추가 치료를 진행하는데 보험혜택이 단안당 5회까지만 적용된다. 재투여 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어도 6회째부터 다시 10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 보니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많아졌다. 얼마 전 국제 습성황반변성연합회 발표 결과에 따르면 2020년에는 황반변성으로 인한 전 세계 국가들의 총 사회적 비용이 423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명 환자의 개인적인 부담과 경제적 손실은 환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10년 전과 달리 환자 수도 늘고, 치료제가 개발됐음에도 여전히 황반변성 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족하다. 경제 형편 때문에 추가 치료를 받지 못해 실명의 기로에 선 환자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줄 수 있도록 보험급여 확대가 절실하다.

[2010. 9. 13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