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김정곤-역사적 근거
▲김정곤(한의81,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총동문회 이사)
최근 의학계 화두는 `근거중심의학(EBMㆍEvidence Based Medicine)`이다. 근거가 확실히 증명된 연구결과가 중요하다는 뜻인데, 한의학에서도 이 개념을 기초로 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근거`가 과연 어떤 `근거`냐에 있다.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근거라 함은 주로 `일정 질환군에 대해 어떤 특정한 치료법이나 약물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가`를 통계적으로 파악해 얻은 결과를 말한다. 이는 과학적 근거(Scientific Evidence)이기는 하나 여기에는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사실이 있다.
1959년 안정제인 탈리도마이드로 인해 기형아가 1000명 이상 출생하고, 1962년 고지혈증 치료제인 트리파라놀이 백내장 등 부작용을 일으켜 회수 조치됐으며, 최근 들어서는 스테로이드나 아스피린의 부작용 사례가 발표된 바 있다.
동물실험을 비롯한 임상시험을 모두 거친 결과 유효성과 안전성이 인정돼 약으로 개발됐지만 인체에 직접 투여해 장기간 사용해 보니 뒤늦게 부작용이 발견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특정 성분을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약물이다 보니 오랜 기간에 걸친 검증이 부족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역사적 근거(Historical Evidence)`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대개 학자들 사이에서는 300년 이상이면 역사적 근거가 인정되며, 이는 과학적 근거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인 한의약이 바로 이런 역사적 근거를 가진 좋은 예가 된다. 통계적 연구가 부족하기는 하나 우리는 이미 한의약의 우수성을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역사적 근거로 체득하고 있다.
작년에 `동의보감`이 의학서적으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배경도 바로 이런 점이 크게 작용했는데, 심사 당시 `400년 전 기록이지만 동아시아 질병 치유와 건강 증진에 이바지했으며, 지금까지도 그런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고 한다.
세계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전통의학인 우리 한의약을 세계화하고 산업화함에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이 `역사적 근거`다.
[2010. 9. 6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