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이택광-정치인이여, 여성도 국민의 절반이다
▲이택광(모교 교수, 문화평론가)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여성비하 발언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구체적인 추가 보도까지 이어진 걸 보면 현장에서 강 의원이 했다는 말들은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다음주 있을 재·보선을 의식해서 재빨리 강 의원을 당에서 제명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그런데 강 의원의 제명을 표한 한나라당 윤리위 부위원장이 공교롭게도 ‘대구 밤문화’로 구설수에 오른 주성영 의원이었다. 한나라당은 지금 <개그콘서트>를 찍자는 심사인 모양이다.
하기야 그 <개그콘서트>를 방영하고 있는 한국방송공사는 정작 그 개그콘서트를 만든 출연자 중 한 명인 코미디언 김미화씨를 데리고 웃지 못할 명예훼손 송사를 벌이고 있으니, 한나라당이 강 의원 제명을 둘러싸고 보여주는 촌극은 그냥 애교로 봐줘도 무방할 지경이다. 정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황당한 일들이 한두 번 벌어진 게 아니지만, 갈수록 그 도가 지나치다는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른바 레임덕이니 권력누수니, 술자리에서 안주 삼기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한나라당은 왜 이처럼 ‘여성 비하’ 또는 ‘성희롱’ 발언과 연루되는 사건들을 많이 일으키는 걸까? 사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여성의 외모와 관련해 말실수를 해서 논란에 휩싸인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과거 후보 시절에 이명박 대통령이 ‘못생긴 마사지걸’ 운운한 것이나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쥐뿔도 모르는 여자’라는 선거 홍보를 내보낸 것이나, 단순하게 우연한 실수나 ‘튀는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정치인에게 특정 여성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준거가 외모나 자질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성을 외모나 자질로 판단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여성의 가치를 남성에 대한 내조 또는 보충이라는 관점에 근거해서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대등한 관계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혐의를 대다수 한국 남성의 범주로 확대해서 “너희들도 그러면서 왜 특정인에게만 순결주의를 강요하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항변이 빠트리고 있는 건 정치인 또는 정치에 부여되는 조건이다. 이 조건은 권력의 사용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정치는 권력이라는 공적인 것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이런 사적인 사용은 엄격하게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근대적인 정치관이다.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파탄을 맞이할 것이고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여자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보여 온 모습들은 이런 기본적인 정치관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야당 남성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이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인이 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나 특정 세력의 주장만을 대의하는 ‘과두제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다. 얼마나 정치인이 민주의식을 갖고 있는지가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여성도 국민의 절반이라는 사실을 이제 남성 정치인들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2010. 7. 23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