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우승지-무기 밀수출로 고립 자초한 ‘先軍북한’
▲우승지(모교 국제정치학 교수)
북한의 무기를 실은 화물기가 태국에 억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평양 방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터져 나온 이 사건으로, 북한이 다시 국제 뉴스의 관심이 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취해진 유엔 안보리 제재조치가 무기수출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국제법상 정당한 조치로 평가된다.
북한 정권이 무기 판매를 통해서 부족한 외화를 벌어 체제 유지비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번 사건이 특이한 것은 과거 해상 루트에 의존하던 관행이 항공 루트로 바뀌었다는 점과 무기 수출 품목이 미사일에서 재래식 전술무기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라는 점이다. 수출 대상도 중동 국가, 분쟁 지역, 하마스, 헤즈볼라 등 무장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북한이 무기 수출에 매달리는 것은 달리 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농업과 공업의 생산 기반 붕괴로 만성적인 공급 부족 속에 부족경제(shortage economy)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이 외화를 벌 수단은 한정돼 있다. 결국 선군(先軍) 노선 속에 비대해진 군수산업에 기대 연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선택은 분명하다. 미국이 태국 정부에 정보를 제공해 수송기 억류가 이뤄진 것을 볼 때 미국은 향후 국제사회와 공조 속에 대북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채 대화에 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국제 감시망을 피해 운신할 수 있는 북한의 폭이 상당히 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한민국 또한 신종플루에 대한 백신을 지원하는 등 인도주의적 문제에는 기민성을 보이고 있지만 북핵 포기와 경제 협력을 연동시키겠다는 의지는 굳건하다.
2012년 강성대국의 포문을 열겠다는 북한의 행보가 다급해지고 있다. 대망의 그해가 2년 남짓 남았지만 순조롭게 일이 풀리기보다 안팎에서 난제가 쌓이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은 과거와 달리 북한의 잇단 ‘러브콜’에도 담담하게 대응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북미 대화의 지렛대로 삼고, 경제 지원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의 급한 불부터 끄겠다는 북의 전략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서해상의 긴장을 고조시켜 한국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 평화체제 구상에 시동을 걸려는 시도도 해군의 단호한 응전으로 무산됐다.
최근의 화폐개혁은 시장의 확산과 부의 불평등 확대가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된다는 당국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조치로 일시적으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고 계획경제 부분이 활성화될 수도 있겠지만 생산의 정상화가 뒤따라주지 않는다면 공급의 부족, 인플레이션에 따른 주민 생활의 어려움은 다시 가중될 것이다. 애써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게 된 주민의 허탈감으로 정권과 주민의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지고 있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 김정일 탄생 70주년, 김정은 탄생 30주년이 되는 2012년에 선군정권이 주민들에게, 온 세상에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까. 혁명의 전통과 평등의 이상은 허울뿐인 자주와 뼈 빠지는 균빈(均貧)의 현실 앞에 녹아내리고 있다. 2000만이 넘는 주민의 곤궁에는 무관심한 위원장이지만 불안한 정권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을 부정(父情)은 지금 무슨 전략을 꿈꾸고 있을까.
결국 북한의 현안은 경제 문제이며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산업이 정상화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핵을 가진 북한에 국제사회는 냉담할 수밖에 없다. 위험한 핵게임으로 불안한 미래를 선사하기보다 화끈한 협상으로 핵 미련 없는 나라를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대도(大道)이며 역사에 남을 일이 될 것이다.
[[우승지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2009. 12. 15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