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경-바보야, 문제는 원칙이야


동문특별강좌 서혜경-바보야, 문제는 원칙이야

작성일 2009-12-07
▲서혜경(모교 음악대학 교수)

헝클어진 실타래는 맹인이 제일 잘 푼다는 말이 있다. 실험을 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모든 신경을 손끝에만 집중할 수 있는 예민함과 단순함이 오히려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집중과 단순함`을 다른 일상사에선 `원칙과 상식`으로 바꾸어도 별로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 일들이 복잡하고 꼬일수록 잔꾀나 술수를 부리지 않고 원칙과 상식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어긋나고 뒤틀어진 사태들을 수습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원칙과 상식은 무엇일까? 원칙은 법률과 논리에 견줄 수 있고, 상식은 질서와 예의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이미 다 배웠다. 대한민국에서는 규정을 준수하고 질서와 예의를 지키는 일은 유치원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낫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집에만 돌아오면 이기심과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좋은 것은 남들보다 먼저 차지해야 하고, 내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하고 뛰어나야 한다는 엄마들 부추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것이다.

세상 어느 천지에 우리 엄마들처럼 잔소리가 심하고, 세상 어느 나라에 우리 엄마들처럼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엄마들이 있을까? 그 잔소리에 아이들 자율성과 논리는 망가져 버리고 매일매일 공부하라는 재촉에 자식들은 경쟁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영국과 일본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질서를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규칙과 남에 대한 배려, 바로 원칙과 상식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피아노밖에 모르는 문외한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원칙과 상식만 지킨다면 정치도 경제도 쉽게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고상한 이념과 거창한 구호는 없어도 된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년에는 온갖 `떼법`과 집단 이기주의가 좀 사그라졌으면 좋겠다. CNN과 BBC 뉴스에 난장판 국회와 화염병과 죽창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업을 해도, 시위를 해도 붉은 머리띠만은 두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이 과연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아니다. 원칙과 상식의 맑은 개울물이 조금만 흘러 준다면 깨끗이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천재 한 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고 했다. 과학과 기술에 최우선적으로 투자를 하면 몇 년 후에는 1000만명을 먹여살릴 100명의 과학기술자가 분명히 나올 것이다. 공무원들이 미래 성장동력을 찾느라 책상 앞에서 밤을 새우지 않아도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기업인들과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과학자들이 앞다투어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은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 심부름만 잘해주면 된다. 이것이 원칙이다. 환경과 관광에 과감한 투자를 하면 살기 좋은 쾌적한 나라가 될 것이고 많은 일자리와 함께 부가가치 높은 관광 수입이 우리 주머니를 채워줄 것이다. 관광 한국의 랜드마크를 만들고 한국 특유의 매력과 이미지를 창출하라. 그러면 관광객은 저절로 몰려올 것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영국 수필가 월터 페이트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했다. 음악에는 모든 아름다움과 조화로운 요소가 녹아들어 있고 심지어는 극적인 긴장감마저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름답고 극적인 음악 속에도 고도의 수학적인 원칙이 있다. 원칙이 없는 음악은 불협화음이 되고 잡음이 된다.

경제나 정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세상만사 모든 문제는 원칙과 상식의 조화일 것이다.

[서혜경 피아니스트ㆍ경희대 교수]
[2009. 12. 4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