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MB의 장검, 창의 창


동문특별강좌 김진-MB의 장검, 창의 창

작성일 2009-11-30
▲김진(경제77,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난 27일 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명박(MB) 대통령은 어느 야당 지도자를 공격했다. 그는 “(행정부처가 이전해선 안 된다는 것에) 그전에는 찬성했다가 위치가 달라지니까 반대하는 분도 있다”고 했다. 많은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이 주요 야당 지도자를 공격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MB의 화살을 맞은 이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다.

MB는 왜 그를 겨냥했을까. ‘세종목장의 결투’에서 MB가 맞서는 3인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회창 총재, 그리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3인 중 변신했다고 MB가 생각하는 이는 이 총재뿐이다. 민주당과 박 전 대표는 2003년의 수도 이전(행정수도)과 2005년의 세종시 모두를 찬성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수도 이전은 반대했다. 세종시에 대해선 지금 충청도의 결사옹호 투쟁을 선도하고 있다. MB의 주장대로 이 총재는 바뀐 것인가.

세종시 대혼란의 뿌리는 7년 전인 2002년 9월 30일이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해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옮기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급했다. 눈앞에서 충청표가 달아나는 게 보였다. 다음 날 이회창 후보는 “일부 중앙부처와 공기업, 국·공립대학의 지방 이전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루아침에 일부 부처가 충청도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2개 부처가 정해졌다. 그는 “대전·충남에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옮겨 ‘과학기술의 수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행정수도는 “충청표를 얻기 위한 무책임한 졸속 공약”이지만 2개 부처 이전은 괜찮다는 거였다.

이 총재는 지금 총리실과 9부2처2청을 옮겨도 국가 효율에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무원의 국회 출석을 줄이고 화상통신·교통을 잘 이용하면 비효율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비효율이 있어도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대의(大義)가 더 중요하다고 이 총재는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2002년에는 현재의 9부(당시엔 12부)를 공약하지 않았나. 이 총재는 57만 표차로 져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충청에서만 25만 표 뒤졌다. 그가 2부가 아니라 총리실과 12부를 약속했더라면 수십만 표 정도는 뒤집었을지 모른다. 그는 왜 이런 역전의 카드를 놓쳤는가. 나무로 치면 2부는 가지지만 총리실과 12부는 줄기다. 그는 혹시 가지 정도는 몰라도 줄기를 옳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 추측이 틀렸다면 이 총재에게 미안한 일이다.

전직 총리 7명이 세종시의 행정부처 이전을 반대한다. 6인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의 총리들이다. 김대중 정권의 총리(이한동)도 들어 있다. 보수정권의 총리 가운데 총리실과 9부의 이전을 찬성하는 이는 이 총재뿐이다. 7인과 1인, 어느 쪽에 지혜가 있는 것일까. 이 총재는 1994년 총리 시절 누구보다도 총리의 헌법상 권리와 위상을 강조했다. 그가 총리직을 그만둔 것도 이 문제 때문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 총리를 포함시키지 않자 이에 도전했다가 경질된 것이다. 그는 그때 “참석 멤버인 통일원·외무부·국방부 장관이 내각의 일원인데도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를 외교·안보 정책에서 배제시킨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그리도 중요한 총리가 이제는 대통령과 120㎞나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물론 수도 이전과 세종시는 다르다. 이 총재는 수도 이전은 반대, 세종시는 찬성했다. 그러므로 MB가 “위치가 달라지니까 반대한다”고 한 것은 100% 맞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총리의 중요성, 그리고 중심부처 이전의 위험성으로 한정해서 보면 다르다. 이 총재의 입장이 달라졌으니 MB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MB의 장검에 창(昌)은 무슨 창(槍)으로 맞설 것인가. 제2의 고해성사일까 아니면 반격일까.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2009. 11. 29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