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신용철-안보의식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신용철(사학60, 모교 명예교수, 총동문회 이사)
"정치 지도자들의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유지될 것 같지 않은데, 그래도 용하게 잘 버텨 나가는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어느 원로 학자의 질문에 대해, 나는 "평범한 서민들이 각자 처한 곳에서 자기의 임무를 열심히 다할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라고 얼떨결에 대답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 61년 역사의 개방적인 자유민주주의 덕택"이라고 덧붙였었다.
작년의 경제위기 이래 금년 가을에는 몇 가지 반가운 소식들이 전해졌다. 경제위기를 다른 나라보다 빨리 극복한다든가, 무역수지의 호조, 환율의 하락, G20 정상회의 유치 등으로 국가의 격이 높아졌다고 한다. 한강이나 광화문 등 서울의 르네상스를 통해 수도의 얼굴을 바꾸느라 분주하다.
불과 60여년의 짧은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우리는 그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참으로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 혹독한 전쟁을 겪었으며,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고립된 섬처럼 매달려서 북방의 사상적 정치적 위협 속에서도 굳세게 생존하고 발전해왔다. 5천년 역사상 최대 도전에 대해 최선의 응전으로 오늘을 성취했다. 분단과 전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청와대의 코밑까지 무장간첩이 침투하고, 잔인한 이승복 살해사건, KAL기의 폭파 등 수많은 테러와 위협에 직면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운 이 가을, 긍정적인 여러 소식을 들으면서 모처럼 안도와 풍성함을 느끼던 중, 우리 시대사의 '아킬레스'인 '간첩사건'을 들었다(10월 30일자 A1면). 민주평통자문위원으로 17년간 활동한 박사 간첩이라고 한다. 지난 10여년간 우리에게 거의 잊혀진 단어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아직도 간첩이 있는지, 그리고 간첩을 지금도 잡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원도 최전방에서는 강동림이 월북한 '구멍 뚫린 철조망'으로 시끄럽더니 여러 명의 군 장교들이 보직 해임됐다. 155마일의 휴전선이야 눈에 보이지만, 사이버 테러로 우리는 한바탕 커다란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디도스(DDoS)의 해킹 문제로 인터넷 세계 최강국의 전산망이 마비되는 초유의 대란을 겪었다. 여기도 더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허술해진 우리 사회의 안보의식이 참으로 불안하다.
우리의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데 근간이 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이며, 이 시대 정신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바로 '안보'이며 '질서'란 것을 우리는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안보의식과 사회질서를 다시 철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시기이다.
[2009. 11. 4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