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철-외치는 통일과 계획하는 통일


동문특별강좌 신용철-외치는 통일과 계획하는 통일

작성일 2009-10-05
▲신용철(사학60, 모교 명예교수, 총동문회 이사)

9월 23일자 A1면의 '통일보다 북 경제 향상이 중요'와 사설 '통일은 원하는 때에 오지 않는다'는 실로 우리 통일의 어려움과 복잡함 및 지혜의 부족 등을 함께 시사해준다. 북한과 핵의 문제를 포함한 통일의 전망이 전혀 불투명한 상황에서 운신할 수 있는 우리 정부의 폭이 아주 좁은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와 방법이 너무 서툴고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다리면서 내면적으로 착실하게 준비하기보다는 외면적으로 크게 외치는 통일을 주장해왔다. "분단의 아픔을 줄이는 데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집중한 독일에 비해, 한국은 직접적으로 통일에만 집착한다"는 어느 독일 통일 전문가의 비판은 바로 우리 정책의 문제점을 잘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복잡한 통일의 문제가 화려한 외교무대에서 선언적인 제안으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아무리 시급하고 중요한 우리의 문제라 하더라도 국제무대에서 이를 주도할 우리의 역량은 충분하지 못하다. 경제력이나 정치력에서 우리보다 월등하게 강력했던 독일이 '통일'이란 용어를 오직 가슴속에만 깊이 묻어 두고, 갈라진 민족 간의 접촉과 교류를 강화하며 기다리던 지혜를 우리는 보았다.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 독일에 통일 계획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의 체결 후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이나 교통과 통신, 문화와 학문의 상당한 교류에 비해 우리가 이룩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서독은 치밀하고 꾸준하게 준비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동독은 물론 주변 국가들을 자극하지 않았다. 내적 독일문제를 다루는 부서를 '내독부(內獨部)', 통일연구소를 '전 독일연구소'라고 부르며, 특히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으로 통일의 바탕을 마련했던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 우리는 내부의 민주적 안정과 발전을 다진 위에 조용하고 내실 있게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는 데 전력하며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분단한 세력들이나 우리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국가들에 우리의 고통을 호소하고 우리의 통일이 '거대한 한국'의 출범이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의 안정과 평화의 구축에 커다란 공헌이 될 것임을 꾸준하게 설득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통일 직후 분단됐던 양독 간의 차이를 해소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겠느냐는 나의 질문에 "아마도 최소한 갈라졌던 시간만큼은 걸리겠지요. 아니면 그보다 더 걸리거나, 아주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같은 국가 안에서도 삶의 격차는 있는 것이니까요"라던 전 독일연구소장의 여유 있고 지혜로운 대답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오는 10월 3일로 이미 통일 19주년을 맞는 독일을 생각하며, 아직도 원점에서만 맴도는 우리의 통일논의가 그저 너무 답답하게 생각된다.

[2009. 9. 29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