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규-황강댐 방류와 북한의 책임


동문특별강좌 김찬규-황강댐 방류와 북한의 책임

작성일 2009-09-16
▲김찬규(모교 명예교수)

2개국 이상을 관류하는 하천을 국제수로라 한다. 국제수로의 이용을 둘러싸고 수로국들 사이에 흔히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하류국이 바다와 상류국 간의 교통을 방해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분쟁과 상류국이 물줄기의 흐름을 가로막아 하류국의 관개·수력발전·공업 및 생활용수의 조달 등 수자원 이용을 방해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분쟁이 대표적 사례이다.

국제법상 긴급피난 해당 안 돼

지난 6일 북한이 황강댐의 물 4000만t을 예고없이 방류함으로써 휴전선 이남의 임진강 유역에 6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야기한 일은 위의 어느 경우에도 속하지 않는 도발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댐의 수위가 높아져 부득이 방류했다는 짤막한 설명을 한 바 있다. 이것은 국제법상 인정된 '긴급피난'의 법리를 원용, 법적 책임을 모면하려는 속셈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는 긴급피난의 법리가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왜냐하면 황강댐은 북한의 지배지역 내에 있는 것이어서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위조절을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긴급피난 법리의 원용이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법리는 행위의 위법성에 대한 조각사유(阻却事由)일 뿐, 행위로 인해 일어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과 같은 상황에서 긴급피난의 법리를 원용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쪽이다. 예컨대, 계속되는 폭우로 황강댐의 수위가 급격히 높아져 댐의 붕괴가 눈에 보이는데도 북한이 수문개방을 요청하는 우리측 요구를 묵살함으로써 댐이 붕괴해 우리쪽 주거지 또는 농경지가 황폐화할 가능성이 높을 때에는 우리 쪽이 인력을 파견해 수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 이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긴급피난의 법리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북한이 보여준 행태는 자가당착이며 또한 적반하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제수로의 비항행적 이용에 관한 국제적 기준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1997년 5월21일 유엔 총회결의 제51/229호로 채택된 '국제수로의 비항행적 이용의 법에 관한 협약'이 있다. 이 협약은 아직 발효되진 않았지만 그 핵심적 규정을 포함한 대부분이 국제관습법을 성문화한 것이기에 발효여부에 관계없이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손해배상·재발방지 협의해야

이 협정에 따르면 국제수로는 "그 물리적 관련성에 의하여 일체(一體· a unitary whole)"로 봐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국제수로의 자국 내 부분에 대해서는 영역국이 마음대로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다는 절대적 영역주권론의 배척을 의미함과 동시에, 각 수로국은 영토보존에 대한 절대적 권리를 가진다는 전제 하에 국제수로의 자연적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류국의 행위는 하류국의 동의없이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절대적 영토보전론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국제수로에 대해서는 상류국 또는 하류국의 구별 없이 모든 수로국들이 "형평하고도 합리적인 이용 및 참가"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나온다. 이 원칙에서 상류국은 자국 내의 국제수로 부분에 대한 사용·수익·처분의 권리를 가지되, 하류국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만부득이 악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상응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번 사건에서 북한이 황강댐의 수위상승을 막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해명을 했다지만 사실여부에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설사 북한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방류에 대한 사전통보를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쪽에 6명의 사망자 및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가 일어난 데 대해서는 책임에서 해방될 수 없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북한이 해야 할 일은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해제 절차를 밟는 일, 다시 말해 사과와 책임자 처벌, 손해배상 및 장래에 대한 보장이라고 본다. 장래에 대한 보장에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협의체제의 구축이 있어야 할 것이며 거기에는 임진강뿐 아니라 북한강의 경우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2009. 9. 15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