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감세 유예, 경제회복·지속성장 막는다


동문특별강좌 안재욱-감세 유예, 경제회복·지속성장 막는다

작성일 2009-09-02
▲안재욱(경제75, 모교 교무처장 겸 대학원장)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1년 전만 해도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암울했다. 제2의 외환위기를 맞는 것이 아닌가, 대공황과 같은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와는 달리 지금 한국경제는 많은 부문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전분기 대비 실질국내총생산(GDP)이 1분기와 2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했고, 각종 생산과 소비 지표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으로 회복되고 있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도 4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고, 8월중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7월에 비해 5포인트 오른 86으로 지난해 4월의 87 수준에 근접했다.

이 같은 성과는 정부 정책의 공이 크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후 과감한 유동성 공급과 통화 스와프로 금융시장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반시장적인 정책으로 인해 극도로 악화됐던 경제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폈다.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소득세 등을 인하했고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했으며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금산분리를 완화했다. 이러한 정책들이 경제가 급격히 추락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일자리가 1년 전보다 7만6000개나 사라졌다.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 급조된 공공부문 인턴·희망근로 취업자를 제외하면 실제로 사라진 일자리는 40만개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막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인한 글로벌 인플레이션 유발 문제, 국제유가 급등, 중국경제의 거품 붕괴 가능성 등 경제회복을 가로막을 수 있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경제의 본격적인 회복과 안정적인 성장은 기업의 투자가 살아나고 민간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질 때 가능하다. 기업의 투자와 민간경제의 활동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규제완화, 감세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보호법 폐지와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를 완화해야 하며, 보다 적극적인 규제 완화와 감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부의 정책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매우 우려된다. 최근 정부는 경제적 취약층의 세금을 줄이고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세금을 늘리는 내년도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기존의 세율 인하 기조를 유지하면서 서민·중산층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과세는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정부는 세제개편안으로 내년 세수가 10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것은 부자로부터 거둬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겠다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이러한 정책은 일자리를 줄여 오히려 서민들과 중산층을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1990년 미국 정부는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어 서민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보트·항공·보석 등에 대한 소비세를 인상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듬해인 1991년 세수입이 3100만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세수입 증가는 1600만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보트산업에서 7600개, 항공산업에서 1470개, 보석산업에서 33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래서 실업보험으로 2420만달러를 지불했으며 결과적으로 760만달러 재정 적자가 났다.

이번 세제정책과 관련, 여당이 감세 유예 기조를 더 강화하려는 분위기는 모처럼 호전되고 있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계층과 관계없는 감세가 경제회복과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우려한다면 그것은 세금을 늘리는 게 아니라 정부 지출을 줄이면 된다. 그것이 정도(正道)다.

[[안재욱 / 경희대 대학원장·경제학,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2009. 9. 1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