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김상국-금융위기와 CEO의 역할
▲김상국(모교 산업공학 교수)
차츰 금융위기가 수그러들면서 이후 경제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의 본질과 위기 해결을 위해 각국 정부가 시행한 정책을 분석해보면, 금융위기 후 세계 경제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미래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줄어든 소비시장에서 과잉 공급 시설을 갖춘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의 생멸이 빠르게 결정되는 다이내믹한 시장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본질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투자은행들이 지나치게 양산한 파생상품들이 연쇄 부도난 사태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은행이 어떤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했다고 하자. 그런데 은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출에서 나오는 원리금으로 이자를 낼 수 있는 다른 돈을 빌려 그것을 다시 대출해주는 일을 반복했다. 모든 사람들이 원리금을 정상적으로 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하나라도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내지 않으면 전체 대출에 큰 문제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이번 금융위기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건 금융위기가 닥치자 금융회사들은 자신의 대출을 갑자기 회수하기 시작했고 갑작스런 대출 회수에 대처 못한 일반 기업과 그 기업에 대출해준 일반 상업은행들도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번 금융위기가 전 금융기관으로 퍼지고, 일반 기업에 까지 영향을 미친 이유다.
그렇다면 이러한 금융위기가 일반 소비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자. 결론적으로 이번 금융위기는 지나친 유동성 공급이 문제였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위기 해결 뒤에 금융기관의 지나친 대출을 감시하는 체제를 만들고 있다. 대출 심사를 엄격히 하고, 대출 한도를 낮추며 은행들이 파생상품을 만드는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이 모든 조치가 뜻하는 것은 명백한 한 가지다. 앞으로 돈 빌리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치명적이다. 미래에는 실업률이 상승하고 기업들의 부침이 심해질 것이다. 이미 이러한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실업률은 지난 6월, 14년 만에 최고치인 7.8%를 기록했다. 미국의 실업률도 9.4%였고, 유로존도 동일한 9.4%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저축률이 높은 일본도 10%대의 저축률에서 최근 3%로 하락했다. 일본 사람들이 소비를 늘려서 저축 수준이 낮아진 게 아니다. 소득이 줄어 저축률이 낮아진 것이다. 기업이 어려우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득이 줄면 사람들의 소비 수준은 하락한다. 그러나 생산시설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각 기업들은 줄어든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출혈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 세계 시장은 기업의 생멸이 빠르게 진행되는 다이내믹한 시장이 될 것이다. 다이내믹한 시장에서 한 번의 실수는 영원한 실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때일수록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역할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최근 우리 경영에서 한 가지 실수가 있었다. 그것은 곧 미국식의 전문경영인만이 합리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주장이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역량 있는 오너경영인만이 할 수 있는 빠른 의사결정과 자원동원력 그리고 집중력은 더 없이 중요하다.
특히 지금 같은 위기 순간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포드자동차도 위기 순간에는 포드 오너 가족이 경영을 했고, 정상화가 되면 다시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겼다. 오너의 잘못된 의사결정의 예는 최근 문제되고 있는 자동차회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없는 현대와 삼성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 외적 요인으로 유능한 오너경영인을 강제로 밀어내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우리가 잘못했다면 그것을 고치면 된다. 지금은 바로 그것이 필요한 때다.
[김상국 경희대 교수·산업공학]
[2009. 9. 2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