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최혜실-한글 세계화 초석을 다졌다
▲최혜실(모교 국어국문학 교수)
최근 한글 수출 소식이 화제다. 영어가 국제어로 위력을 떨치고 있고 한국에서도 영어 학습 열풍이 불고 있는 마당에 참 놀라운 소식이다. 물론 우리말이 아니고 표기체계인 한글만 수출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도네시아 부톤섬에 사는 찌아찌아족은 인구 50만명의 소수민족인데 토착어를 표기할 문자로 한글을 공식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언어학자가 무문자(無文字)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대부분 비공식적이었고 일시적이어서 실패했으나 최근 훈민정음학회에서 바우바우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해 공식적인 한글교육 기반을 만든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 반포 이후 한글이 국경을 넘은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한국어의 보급이 아니라서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최근 들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영어는 이미 세계 공통의 의사소통 도구로서 그 입지를 굳혔다. 따라서 이제 남은 현실적인 방법은 세계인의 공통 언어로서의 영어의 위치를 일단 인정하고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로서의 한글의 위치를 확장시키는 것일 터이다.
그 방법으로 소통의 도구로서의 한글뿐 아니라 자국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언어로서의 한글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한글 서체를 패션에 접목하거나 한글 서체를 응용한 무용 등으로 한국 문화에 녹아 있는 한글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는 세계 6000개 언어 가운데 단 4%인 240개 민족만 문자가 있는 데다 현재 사용 문자는 30개 정도인 상황에서 문화민족으로서의 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한국 문화를 수출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으로서 효과가 있다. 글자가 없는 민족이 수천이 되기 때문에 잠재력도 무한하다. 그러나 한글을 세계화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
첫째, 해당 국가와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해당 국가에서 한글 표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글자가 없는 나라에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할 도구를 제공하면서 우리의 문화를 수출한다는 의도가 자칫 문화침략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입국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접근과 대화가 필수적이다.
둘째, 다양한 국가가 수용하기 위해서 광범위한 외국어의 발음이 기록 가능한 범용 문서작성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한글 표기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 표준과 각 국가별 응용 체계를 나누어 개발해야 한다. 우선 한글의 기본 자음과 모음을 정하고 각 국가별로 실제 표기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기본글자가 특정 국가에서는 필요 없을 수가 있고 한글 기본표기법에는 없는 발음이 있을 수 있다.
셋째,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이점을 활용해 매체를 선점함으로써 지금 보편적으로 쓰이는 로마자 표기법을 대체하는 것이다. 휴대전화는 세계인이 애용하고 있는 통신수단이다. 찌아찌아족 같은 문자가 없는 민족이 한글로 안부 문자를 가족에게 보낼 때 얼마나 기쁠 것인가.
이는 무문자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글 어휘를 익히지 않고 그저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만 배우는 데는 1주일이면 충분하다. 로밍된 국내 휴대전화로 어떤 나라 사람이건 휴대전화 문자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한글 글자를 부호화할 때 완성형으로 할지 조합형으로 할지 고심해야 하고 전면 또는 부분 풀어쓰기를 허용해야 할지도 더 연구해야 한다.
한글 세계화를 위해서는 표준화가 필수적이다. 세계인이 한국어로 소통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나 표기체계로서 한글의 선점 가능성은 아직 존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제 한국은 찌아찌아족의 표기문자로서 한글을 수출함으로써 세계화의 초석을 다졌다. 이를 발판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표준화와 보편화를 이룸으로써 표기체계의 세계화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
최혜실 경희대 교수·국어국문학
[2009. 8. 12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