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허동현-[그때 오늘] 왕조의 운명 저물어가던 무렵 홍릉 석상에 올라탄 ‘미국 공주’
▲허동현(모교 학부대학장)
1905년 7월 29일 도쿄에서 미국의 육군장관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는 비밀협약을 맺었다.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 평화에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 그때 미국은 일본의 손아귀에 한국을 넘기는 대신 필리핀 지배를 약속받았다.
2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진 ‘가쓰라-태프트 각서’는 우리 위정자들이 금과옥조로 믿었던 조·미 수호조약 제1조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다른 나라가 공정치 못하게 모욕을 주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서로 돕는다.” 거중조정(good offices)의 의무는 외교적 꾸밈말에 지나지 않았다. 러일전쟁이 터진 이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미 일본의 한국 지배를 당연시했다. “한국은 자치할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해 한국인에게 불가능했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능률적으로 통치한다면 모든 사람을 위해 보다 좋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905년 1월 뤼순(旅順)이 함락되자 열강은 일본의 승리를 점쳤다. 6월 열강은 미국에 러·일 두 나라의 강화를 조율해 주길 요청했다.
8월 9일 미국 포츠머스에서 러·일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12일 영국은 제2차 영·일 동맹을 맺어 일본의 손을 들어 줬다. “일본은 한국에서 정치·군사·경제적으로 탁월한 이익을 갖고 있으므로 영국은 일본이 지도·감리 및 보호 조치를 한국에서 집행하는 권리를 승인한다.” 9월 5일 맺어진 포츠머스 조약에서 패전국 러시아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묵인했다. 9일 프랑스가 ‘루비에-버티 협의’를 통해 한국 문제에 대한 영국의 조처를 받아들였다. 27일 빌헬름 2세도 독일이 극동에서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기로 루스벨트와 합의했다.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해 국제적 합의가 끝나 가던 9월 19일.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가 이 땅에 왔다.
대한제국 황제는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미국 공주’를 극진히 환대했다. 일본의 만행을 알리려 명성황후를 모신 홍릉에서 환영만찬을 열었지만 그녀는 능을 지키는 돌짐승에 마음을 뺏겼을 뿐이다. 석마(石馬)에 올라탄 그녀의 모습(사진)은 도와줄 이 아무도 없던 대한제국의 아픈 현실을 상징하는 소극(笑劇)이다. 남의 힘에 기대 생존하려 했던 한 세기 전의 슬픈 역사는 다시 돌아온 제국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2009. 7. 29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