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권영준-국회의장의 생명은 정직과 신뢰
▲권영준(모교 경영학 교수)
지난주 미디어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라는 독소적 호위 아래 밀어붙였던 4개 법안 가운데 전혀 엉뚱한 법안 하나가 들어갔는데, 그것이 바로 재벌들이 은행지주회사를 쉽게 소유하여 황제식 경영의 소유지배구조를 공고화시켜 줄 수 있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다.
도대체 금융지주회사법이 무엇인가? 그리고 어째서 전문가들이 공청회와 상임위를 통해서 심도깊은 논의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념법안인 미디어법과 함께 최악의 수단인 직권상정을 통해, 국민들이 무슨 법안인지도 모른 채, 강제적으로 밀어붙인단 말인가?
우리 경제 죽이는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
이번에 직권상정이라는 전쟁 통에 몰래 밀어붙인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지난 4월에 억지로 통과시킨 은행법과 아울러 우리 금융구조를 재벌들이 독식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시켜 우리 경제의 후진성을 가속화시키고, (국민)금융과 (재벌)산업의 통합이라는 반시장적인 행태를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하여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죽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와 같은 세계적 경제위기가 무분별한 금융에 대한 규제완화로 인해 발생했다는 반성에서 세계 각 나라가 경쟁적으로 금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인데 반하여, MB정부는 그동안 역대 어느 정부도 금기시했던 재벌들에게 은행을 포함한 금융산업을 송두리째 바치는 최악의 선택을 감행한 것이다.
특별히 이번에 강행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자회사로 제조업을 거느릴 수 있고, 나아가 기존의 금융지주회사와 달리 제조업에 대해 수직적 출자를 가능하게 하며, 기존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자산운용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이다. 즉, 편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고객이 맡겨둔 돈을 갖고 얼마든지 재벌 총수의 지배권을 강화시키는 데 악용할 소지가 많게 하는 법안인 것이다.
이제, 삼성과 같은 대재벌은 현재와 같이 골치덩어리인 소유지배의 연결고리를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지배구조를 더욱 총수중심으로 공고히 만들 수 있는 최대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미디어법안이 정치적 민주화를 가로막는 여론의 독과점을 공고히 하는 악법이라면, 이번에 전문가들의 논의절차와 검증도 무시한 채 직권상정에 몰래 집어넣은 금융지주회사법안은 경제 민주화를 영원히 후퇴시키는 국민경제적 독약처방과 다름이 없다.
이런 이유로 경제 및 경영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NGO의 설문조사에서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금산통합법안에 대해서 압도적인 비율로 반대하고 있다. 경제·경영학자 76%가 ‘대기업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보험·증권지주회사의 비금융회사 자회사(일반회사) 소유 허용’도 73.1%가 반대하고 있으며, 금산분리원칙의 폐기법안은 경제위기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67.3%였다.
경제학자 76% 기업의 은행소유 반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미디어법안이라는 쓰나미 속에 전문가들이 정치하게 따져서 신중하게 처리했어야 할 금융지주회사법안을 국민들도 모른 채 직권상정이라는 최악의 수단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흡사 쓰나미가 몰려오는 와중에 은행에 들어가 금고를 들고 나오는 것과 같은 파렴치한 행동이라 비판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회의장이 전문가로서 금산통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도 직권상정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면 의장에게 가장 요구되는 정직이라는 덕목에 위배되는 것이고, 만일 무슨 법안인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다면 이는 의장에게 부여한 국민들의 신뢰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행위인 것이다. 국회의장은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2009. 7. 27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