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8-음식보다 좋은 보약(補藥)은 없다


동문특별강좌 건강칼럼8-음식보다 좋은 보약(補藥)은 없다

작성일 2005-09-12
< 음식보다 좋은 보약(補藥)은 없다 >

신준식(한의35회, 대한추나학회장)

**신체를 편안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근본은 올바른 식사
의식동원(醫食同源), 식약일체(食藥一體)란 말이 있다. 우선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인도의 의성(醫聖)기바는 스승으로부터 만물 중에 약이 되지 못하는 것 세 가지를 구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10년 가까이 헤매어 다녀도 약이 되지 않는 것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비탄과 절망감으로 스승 앞에 나선 기바는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 약 아닌 게 없었다고 바로 고했다. 그러자 그 스승은 기바를 인도 최고의 의사로 선포하고 왕궁의 어의가 되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약을 처방하는 것은 의사에게 딸린 고유 권한이라 하겠지만 음식의 처방만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은 생명체가 활동 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옛말에 '하루 세끼 보리밥이 인삼·녹용 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이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음식의 고귀함을 뜻한 것이리라.
 중국 당나라 명의였던 손사막은,  의사로서 환자를 보면 먼저 병의 근원을 깨닫고, 어디가 침범되었는지를 알고, 음식물로 이를 치료하고, 다음 식이요법으로 병이 낫지 않을 때 비로소 약을 사용하라고 일렀다.
비단 노인이나 소아에게만 이런 방법이 좋은 게 아니다. 튼튼한 사람이거나 또 오랜 병고로 약 먹기를 싫어하는 사람, 가난해서 재물이 없는 사람등 모든 경우에 음식조절로 다스리는  게 좋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과거 전염병이 창궐하면 속수무책이었던 시절에는 약이 최우선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현대인들은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자업자득으로 생긴 식원병(食源病)을 앓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런 병들은 대체로 중년 이후에 많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예부터 전문의 제도가 있어, 종의(腫醫), 침의(針醫), 약의(藥醫), 식의(食醫) 등의 구별이 있었다. 고려 때에는 상약국(尙藥局) 과 함께 상식국(尙食局)제도가 있었다.
독일의 시성(詩聖)괴테는 '인간은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질병과 가까워진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테면 문명화와 이에 따른 수많은 약의 개발이 인류에 공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과거에는 없었던 더 강도 높은 질병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 잡병편(雜病篇)에서 허준 선생은 올바른 식사와 약의 성질이 병을 물리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신체를 편안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근본은 올바른 식사에 있고, 병을 치료해서 생명을 구해 내는 길은 오로지 약에 있다. 어떤 식품이 좋은지를 모른다면 생명을 온전히 할 수 없고, 약의 성질에 밝지 못하면 병을 물리칠 수가 없다. 음식물은 신체에 해로운 것을 없애고 오장육부를 편안하게 해주며, 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건강을 증진 시켜 기혈(氣血)을 북돋워 주기 때문에 사람이라면 마땅히 식품과 약의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효도를 하려는 이는 음식과 약의 두 가지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한다."

이상의 기술에서 우리는 의식 동원(醫食同源), 곧 의(醫)와 식(食)이 한 뿌리이며, 식약일체(食藥一體), 곧 식(食)과 약(藥)이 다른 개념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허준 선생은 음식의 귀중함을 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세상 천지에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먹은 음식물뿐이다. 음식물은 흙의 기운을 갖추고 있어 성질이 편벽되지 않고 맛이 담백하여 몸을 보(補)해 주고 신진대사를 올바르게 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먹어도 물리는 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식품이 우리 건강과 생명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 점인데 약은 그렇지 않다. 인삼이나 황기 같은 것은 좋은 보약인데도 역시 성질이 치우쳐서 음식처럼 먹을 수 없다. 하물며 병을 공격하는데 쓰는 치료약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음식은 우리의 생명소, 식품을 약보다 귀하게 다뤄야
그렇다. 약은 건강을 잃거나 병이 들었을 때 먹게된다. 그리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음식은 평소 먹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의 생명소(生命素)이다. 그렇게 보자면 약보다 귀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 식품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식품을 어떻게 먹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체질의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건강이 결정된다.
열이 많은 사람에게 고추, 후추와 같은 열식품을 계속 먹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차가운 사람에게 오이처럼 냉한 식품을 지속적으로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
식품끼리도 궁합(宮合)이 있다. 그래서 서로 잘만 맞으면 식품을 함께 섞어서 먹으면 오히려 영양가는 파괴된다. 사람과 식품, 식품과 식품끼리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건강한 일생을 보낼 수 있다.
20세기의 신비스러운 명상가이자 철학자, 뛰어난 화가이면서 시인이었던 칼리 지브란 은 그의 산문시(散文詩)[예언자]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이러 잠언을 남겼다.
그대들 대지의 향기로만 살 수 있다면, 마치 빛으로 살아가는 기생(氣生)식물처럼.
하지만 그대들 먹기 위해서 살해해야 하고 목마름을 달래기 이해 어미의 젖으로부터 갓난 것들을 떼어 내야 함을
그러므로 그 행위를 하나의 예배가 되게 하라.
그대들의 식탁을 제단으로 세우고, 그 위에서 술과 평원의 순수 무구한 것들은 인간 속의 보다 순결한 것, 또 더욱 무구한 것을 위해 희생되어지도록 하라.
그대들 짐승을 살해하여야 할 땐 마음속으로부터 속삭이라.
"그대 살해의 힘으로 나 역시 살해당하고 있음을. 나 역시 먹히는 것. 나의 손아귀 속으로 그대 인도한 법칙은 보다 힘센 손아귀 속으로 나  또한 인도할 것을. 그대 피와 또 내 피란 하늘의 나무를 키우는 수액(樹液)에 불과할 뿐인 것."
그대들 이로 사과를 깨물 때엔 마음속으로부터 속삭이라.
"그대 씨앗은 내 몸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그대 미래의 싹을 내 심장 속에서 꽃피우리. 그리하여 그대 향기는 내 숨결이 되어 우리 함께 온 계절을 누리리라."
또한 가을이 되어 포도주를 짜기 위해 그대들 포도밭에서 포도알들을 따 모을 때엔 마음속으로부터 속삭여주라.
"나 역시 포도밭과 같으니 나의 열매 또한 포도주를 짜기 위해 거두어질 것을. 그러면 나  역시 새포도주처럼 영원의 항아리 속에 담겨질 것을."
그리하여 겨울이 되어 그대들 포도주를 따를 때면 하나의 잔마다 하나의 노래를 그대들의 마음 속에 따르게 하라.
그리하여 그 노래 속에 가을날들과 포도밭과 포도주 짜던 추억을 간직케 하라.
먹는 데 있어서도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자세로, 식탁을 마치 제단처럼 생각하라는 말씀이 폐부를 찌른다.

- 동문회보 127호 (1999년 7월)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