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술과 인생-중국역사 속의 고량주와 명인
술과 인생-중국역사 속의 고량주와 명인(名人) - 오일환 (사학32회)
술은 인생에서 희노애락과 만남과 이별 등 일상생활 속에서 커다란 의미를 주고있다. 또한 결혼,득남,수연,상사 등에서도 석잔 술인 중매주, 결혼할 때의 희주, 교배주, 합환주 등이 있고,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하며 마시는 여아주, 장원홍, 백일주, 돌주 등이 있다. 뿐 만아니라 입학초기나 축제, 행사, 친구를 만났을때 등은 물론 철학적인 방황을 할 때도 한잔 술이 큰 역할과 위안이 된다. 이러한 술은 중국에서 어떠한 의미로 시작되었고 무엇이 있으며 개혁 개방 후에는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가. 그리고 술과 관련된 역사 속의 '명인'은 인생에서 술을 어떻게 이용하였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간략하게 '중국역사 속의 고량주와 명인에 대하여 살펴보고 우리의 전통술과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에 대하여도 살펴보았다.
1. 술의 의미와 고량주
술의 본질과 효능은 차치하고 술을 뜻하는 한자는 주(酒),례,창,요,장,역,서 등 자전 상으로도 대략 십 여개가 넘는다. 술은 천지, 산천, 사직, 종묘, 조상, 귀신 등에 대해 제사를 올릴 때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제례 후의 음주가 하나의 풍속으로 점점 정착되어 갔다. 중국에서 술은 우나라때 의적(儀狄) 혹은 두강(杜康)이 만들었다고 하며 이들에 관한 유적과 옛 고서들에도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1953년 전국 제1회 주류 품평회에서 중국 8대 명주가 선정된 이래 각 부문별의 품평회가 열리고 있다. 고량주라고 불리는 백주는 종류와 명칭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알콜농도가 대부분 53도이지만 최고 67도짜리도 있다.
비교적 유명한 산서 분주(汾酒), 귀주 모태주(茅苔酒). 동주(董酒), 섬서 서봉주(西鳳酒), 사천 오량액(五糧液). 검남춘(劍南春).노주노교특곡, 강소 양하대곡(洋河大曲).쌍구(雙溝), 안휘 고정공주(古井貢酒). 구자주(口子酒). 보풍주(寶豊酒), 산동 공부가주(孔府家酒), 계림 삼화주(三花酒) 등이 널리 알려진 명주들이다. 이외에 약제를 넣은 산서 죽엽청(竹葉靑),절강 소흥 가반주(加飯酒),광주 오가피주(五加皮酒), 장춘의 인삼주(人蔘酒) 등과 여러종류의 과즙주가 있다.
그러나 개혁 개방이후 생활의 변화와 함께 나타난 백주에 대한 명칭은 고급화와 39도의 낮은 알콜도수로 되었고 역사 명인이나 고사,문학작품들과 관련된 명칭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산동지역이 가장 많은데 공자와 관련된 공주(孔酒),공부가주(孔府家酒),공부연주(孔府宴酒)가 있고 맹자의 맹부주(孟府酒),손자병법의 손자주(孫子酒),문장가 조식의 조식주(曹植酒),두강이라는 노인이 마시고 3일간 취했다는 두강주(杜康酒), 시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태백의 태백주(太白酒),사마상여와 탁문군이 사랑에 빠져 도망가 주점을 경영하면서 유명해졌다는 문군주(文君酒),태산 봉선과 관련된 태산특곡(泰山特曲),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러 산동으로 갔다는 서복주(徐福酒),동중서의 동공주(董公酒),12명의 주인공 이름별로 담겨있는 홍루몽주(紅樓夢酒)등이 있다.
2. 중국역사속의 음주와 인생
술은 자고로'마음이 맞는 친구와 마시면 1천배도 적다'고 하였고 '술 마신 후에야 비로소 진실된 말을 한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제나라 관중은 '몸을 망치는 것보다는 술을 버리는 것이 좋다'라 하였고 명말 청초의 고염무는 '물은 땅을 위태롭게하지만 술은 사람을 위태롭게한다'고 술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술로 인하여 국사를 그르치고 천하를 잃은 역대 제왕들도 허다하다. 하(夏)의 걸(桀)왕은 '3천여명이 마치 소가 물마시듯이 먹고 놀았다'하며 상(商)의 주(紂)왕은 '7일낮과 밤을 쉬지 않고 주지육림 속에서 마시고 놀았다'한다. 제(齊)나라 경공(景公)과 위왕(威王),진(晉)의 효문제 ,북주(北周)의 선제,남북조시 진(陳)나라 진숙보(陳叔寶),16국시대의 진(秦)나라 부생(符生)등이 술로 인해 천하를 잃은 제왕들이다.
항우가 유방을 주연에 초청하여 살해하려 했던 '홍문연(鴻門宴)'사건,{삼국연의(三國演義)}중 조조와 유비가 술잔을 놓고 영웅을 논하는 '조조자주론영웅(曹操煮酒論英雄)'의 유명한 음주고사가 있고 서진(西晉)의 왕개(王愷),석숭(石崇)은 주연을 열어 살인을 일삼았다한다. '진교병변(陳橋兵變)'후에 황제에 오른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장군들에게 탈권당할까 두려워 주연을 베푼자리에서 황권에 대해 장군들의 의견을 구하자 이 뜻을 알아차린 석수신등이 병을 핑계 삼아 군사권을 조광윤에게 넘겨주었다는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은 오늘날에도 역사적으로 적지않은 의미를 남긴다.
특히 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호주가 문인들은 술과 자연에 대해 예찬하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이들에게는 주광(酒狂).주도(徒).주귀(鬼).주룡(龍).주웅(雄)그리고 취룡(醉龍).취호(戶).취옹(翁)등으로 불렀다.
동진(東晉)시대 도연명의 {음주(飮酒)},서예가인 왕희지 그리고 '주선(酒仙).주성(聖).주성혼(星魂)등으로 불리며 취중고사들이 문학과 경극,서화등 예술방면에 많이 등장하는 당나라의 시인 이백이 있고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가 있다. 송나라 구양수의 {취옹정기(醉翁亭記)},소식의 {주경(酒經)},여류 단편문학가인 이청조의 {취화음(醉花陰)}등도 빼놓을 수 없다. 명대 문학가 원굉도는 {상정(觴政)}에서 음주자와 술,안주에 대해서 상세히 구분하여 논하였다.
술은 출병시에도 훌륭한 역할을 하였는데 월나라 구천(勾踐)이 오나라를 벌하러 갈때 절강 소흥지역에 이르러 군사들에게 술을 나누어 주어 용기 백배하도록 하였고,삼국시대의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에서도 술이 사용되고 있으며,장비는 술로 인해 그의 부하에게 살해 당하였다. 한나라 유방은 천하 통일 후 그의 고향인 강소 패현에서 주연을 열었으며 무제때 곽거병은 하서회랑을 점령한 공으로 술을 하사받았으나 술에 비해 군사가 너무 많아 모두 마실 수 없게 되자 술을 샘에 넣어서 함께 마셨다는 감숙성 주천현의 주천공원 우물이 있다. 이외에도 조조나 관우등도 출사할때 승리를 위해 술을 마시고 있다.
맺음말을 대신하여- 우리 전통 민속주의 현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의 전통주는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라고 전하지만 우리의 {삼국사기}나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등에는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술문화가 형성되었다 한다. 고려나 조선시대때는 300여종의 술이 전래되었다고 하지만 1909년 일제시대때 주세법이 시행되자 술의 제조가 제한되거나 금지되었다. 그리고 서양술이 들어오게 되면서 부터 전통주는 대부분 사라지거나 집에서 조금씩 만들게 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1963년 양곡관리법이 강력하게 시행되어 민속주는 또 다시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부터 쌀의 생산량이 풍족해 지고 올림픽 등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사회적으로 전통을 찾고자하는 노력의 하나로 전통술을 살려내자는 분위기가 일기 시작하여 마침내 전통 민속주는 개별적인 심사를 거쳐 중요무형 문화재로 지정을 받아 50여종이 생산되고 있다.
전통술들은 보통 지명에다가 술이름을 붙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주들은 경기지역에 남북한 교류나 외교상의 의전주로 유명한 서울 문배주,남양주 계명주,당정 옥로주(율무45%),향온주,저온발효를 세번시킨 삼해주,광주 산성소주,송도 칠선주등이 있다. 강원지역에는 서주,홍천 옥선주 ,쑥 동동주, 칡주, 한옥로주 등이 있으며 충북지역에는 청명주,구기자주,송로주,신선주 등이 있다. 충남지역에는 연엽주,한산 소곡주(15%),공주 계룡백일주,면천 두견주(진달래꽃40%),금산 인삼주,왕주 등이 있다. 전북지역은 전주의 이강주(梨薑酒,25%),고창의 복분자주(산딸기19%),송순주,송화주 등이 있고 경남지역에는 국화주와 유자주가 있다. 경북에는 김천의 과하주(16%),안동 소주(45%),송화주,하향주, 문경의 호산춘주 등이 있다. 전남지역에는 영지버섯주,진도 구기자주,진도 홍주(지치주41%),남해 유자주,담양 죽엽청주(40%),함양 국화주(16%),승주 사삼주(더덕,14%)가 있다. 제주지역에 오메기술(차좁쌀술)이 있고 이외에 지리산 솔송주 등 200여종의 민속주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맑은 물 그리고 멥쌀, 찹쌀등의 누룩 등의 곡식에다가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가미하고 여기에 약재를 약간 넣어 만든 약주들이 대부분이다. 알코올 도수도 16도와 45도 정도의 두 종류로 한정되어 있으며 값도 일반 보통 소주보다 10배 이상 비싸고 가내 수공업적인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대중주로서는 한계가 많다.
개혁개방 18년 속에 중국인민들은 경제생활의 향상과 더불어 음주 문화에서도 변화를 겪고 있다. 역사명인이나 고사들과 연관된 이름의 다양해지고 고급화된 낮은 도수의 현대적인 고량주가 등장함으로 인해 인민들은 음주 속에서 역사적인 선인들의 행적이나 고사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사상적인 회귀나 회포를 느끼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황궁에서 황제가 마시던 술,국가 연회에 사용되는 술, 성현의 제례에 사용되는 술, 문객이 마시던 술 등 일반 인민들과 접촉이 불가능했던 예전의 음주 문화가 오늘날 중국식 사회주의하에서 술을 매개로 하여 신분상 동등한 하나의 구성원임을 느끼며 역사 명인과 함께 살아 움직이고 즐기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백주류의 명칭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즐기는 진로, 경월 등이나 세계화 명분 속의 시티나 그린 등과는 명확히 구분되고 최근에 나오기 시작하는 참나무통 맑은물이나 청색지대,김삿갓, 곰바우등도 역시 풍류나 자연 등 환경 친화적인 소재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어쨌든 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그 폐해의 막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사에서 유토피아를 갈 수 있는 하나의 청량제 역할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중국의 현실에서 볼 때 개혁개방과 애국주의 교육강화를 주창하는 현실에서 역사속의 명인과 고사들의 술이 더욱 늘어날 것같다. 그러나 술냄새 찌든향 속에서 역사의 향내를 찾는다면 이 얼마나 멋진 냄새가 아니겠는가.
- 1998년 10월 (119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