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인도기행(22)
< 네팔을 떠나 파키스탄 카라치로 >
이윤희 (사학21회. 문학박사. 서일대학교수)
------- 순박한 파키스탄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친절미를 보이지만 이 나라의 관광정책은 미숙하기 그지없고....
카투만두 시내 관광을 끝내고 서둘러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 카운터에 앉아있던 남자는 좌석을 요구하기도 전에 히말라야 산이 가장 잘 보이는 맨 앞의 오른쪽 좌석을 준다고 생색을 낸다. 그러나
"카투만두에 있는 파키스탄 항공사에 왜 들리지 않았는가? "
그곳에 들려서 예약 확인을 하지 않았다며 손바닥만한 확인서가 붙은 다른 사람의 비행기 표를 보여주면서 말 해왔다. 그러고 보니 며칠전 일이 생각났다.
파키스탄 항공사에 전화하여 카라치행 표를 컨폼하려고 했더니 사무실까지 오라는 것이다.
"이미 서울에서 예약을 해두었고 계획대로 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데 항공사까지 방문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여행하는데 볼 것도 많고 할 일도 많고 시간도 부족하다. 어느 항공사도 전화 한 통화로 확인하지 않느냐, 유독 파키스탄 항공사만 이럴 이유가 뭔가?”하고 대답했더니
"여권을 확인하겠다."고 한다.
"여권은 공항에서 보는 것 아니냐," 고 말하니 전화 속에서 옆사람과 한참 소근소근 하더니
"비자를 확인하겠다." 고 한다.
"서울에 있는 파키스타 대사관이 카라치 공항에서 비자수수료를 내면 현장에서 발급해 준다.”고 말 하더라니까 더 이상 이야기 않고 되었다고 하면서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었다.
그런데 네팔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하는데 카운터에서 또 들먹거리며 피곤하게 한다. 만일의 경우 공항에서 다시 카투만두에 있는 파키스탄 항공사에 다녀와야 할 급박한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직원은 카투만두 소재 파키스탄 항공사의 확인서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출국수속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내 항공권과 여행가방만 조사하면 되었지 비행기 좌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막느냐"고 언성을 높였더니
"이런 상황으로는 파키스탄 카라치 공항에 입국할 수 없기 때문" 이라고 한다.
"카라치 공항에 입국하고 못하고는 카라치 공항에서 알아서 결정 할 일이니 당신들은 여기 수속만 끝내주면 될 것 아니냐."
고 되받아서 말했더니 저쪽의 연장자로 보이는 동료에게 물어보고는 자기들도 괜히 옥신각신 할 필요 없다는 듯이 통과시켜 주었다
네팔에서 카라치행 파키스탄 비행기에 올랐다.
드물게 보는 현상이지만 비행기 탑승이 빨리 시작되고 있었다. 경비 안내원에게
"출발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지 않아요?" 하고 물었다.
"지정 시간보다 빨리 출발합니다."
분명히 출발 시간보다 30분 먼저 모든 준비를 갖추고 기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내방송은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을 기장이라고 소개하면서 느닷없이 코란을 낭송하는 것이다. 어찌나 경건하고 낭랑한 목소리였던지 웃음보다는 신앙심과 엄숙성을 느끼게 했다. 출발을 서둘렀으나 막상 활주로의 진입을 대기한 자리에서 20분 동안 움직이질 않는다. 활주로가 하나 뿐이어서 착륙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가 서산에 기울면서 이륙했지만 카투만두의 매연을 벗어남과 동시에 오른 쪽으로 히말라야 雪山의 壯觀이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속 카운터의 사람이 앞자리 오른쪽 제일 좋은 좌석을 준다고 생색을 냈으나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볼거냐고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는데 그의 말이 진실임을 느끼게 한다.
히말라야는 地上의 땅이 아닌 天上의 땅이었다.
해가 기울면서 어두움이 드리우기 전의 히말라야 산의 모습은 나에게 또 다른 감동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완전히 어둠이 깔려 주변 경관을 식별할 수 없을 때까지 약 20분 동안 히말라야의 장엄한 모습을 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주시하였다.
3시간 비행인데 2시간 동안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귀가 찢어지는 듯 아프고 머리가 어지럽고 온 몸이 아파서 몹시 고통스러웠다. 억지로 걸음을 옮겨 내리고 보니까 승객은 서양인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모두 통과 여행객들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파키스탄의 카라치 공항 시설은 대단히 훌륭했다. 규모는 약간 작지만 새로 지은 건물로 싱가포르나 방콕 공항과 견줄만 했다. 로딩브리지가 언뜻 보기에도 10여개가 갖추어져 있고 공항청사는 매우 긴 건물로 연결되어 있는데 최신식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놓고 있다.
파키스탄 관리에게 카라치 공항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다고 말했더니 고맙다고 대답하면서 느닷없이 당당한 표정으로 엉뚱하게도
"뉴델리 공항은 낡고 더럽다." 고 말하는 것이다.
파키스탄인들의 인도에 대한 적대 감정은 대강 예측하고 있었지만 내가 인도로부터 입국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들의 이 엉뚱한 대답에서 인도에 대한 감정을 더욱 뚜렷이 알 수 있었다.
파키스탄에 입국하는 외국 관광객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나라 공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친절과 호의를 느끼게 했다.
입국수속을 하면서 관리와 대화하는 도중에 갑자기 기침이 심하게 나오니까 오히려 그 사람들이 놀라서 보건부에서 나와있는 의사에게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의사는 증상을 묻고 약을 주면서 15분 후면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의사의 특유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는 동안 가방은 벌써 나와 있었고 외국인이 없어서 그런지 가방을 검사 할 생각은 않고 통과시켰다.
환전한 후에 숙소를 정하기 위해 관광안내소를 찾았지만 도대체 관광안내소라는 것 자체가 없다. 파키스탄이 관광사업에 얼마나 뒤져있고 소극적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밤 8시가 넘어 도착했는데 공항 청사 밖으로 나가 택시운전수에게 호텔 결정을 맡길 수는 없었다.
공항청사 이층은 국내선 전용이라고 해서 행여나 도움을 받을까하여 올라갔지만 여행안내소는 발견할 수 없었다. 여행안내소를 찾을 수 없어 파키스탄 항공사 사무실 간판이 있길래 들어갔더니 조종사 대기실인 듯 생각되는 곳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 비행기로 카라치에 왔는데 호텔을 구할 수 없지 않느냐, 최소한 호텔 리스트는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 밤늦게 도착한 외국인이 어떻게 숙소를 구하란 말이냐.”
고 말했더니 조종사 차림의 한 사람이 누구를 불러다 시키고 하지만 역시 호텔리스트 같은 것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중심가에 있는 크게 비싸지 않은 큰 규모의 호텔에 들었으면 좋겠다."
고 했더니 이 사람이 친절하게도 전화로 호텔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그 호텔에 전화해서 Meran호텔의 요금까지 정확히 알아내어 알려주는 것이다.
호텔 주소를 적어 주길래 밖에 나와 택시를 타기 위해 요금을 흥정하고 있는데 공항 하급관리인 듯한 사람이 와서 그 호텔 버스가 저기 있으니 요금 지불하지 않고 갈 수 있다고 친절하게 그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불과 반세기 전 만해도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지 않고 같은 인도 국민으로 생활해 왔겠지만 언뜻보아 파키스탄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과는 쉽게 구별될 수 있을 것 같다. 죽 뻗은 체구에 인도인 보다는 인물이 돋보이고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다. 저 사람들이 아마도 빠탄족일 것이다. 인도의 6분의 1도 못되는 인구를 가지고서도 파키스탄이 인도와 당당히 겨루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로를 달리는데 「선경」선전 간판이 보이고 말쑥한 대우 「르망」자동차도 보였다. 택시비도 들이지 않고 호텔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피곤한 몸으로 여정을 풀었다.
집을 떠나 여러날 흐른데다 심한 감기까지 겹쳐 아침 일찍 일어나기 힘들었다. 8층에 올라가 아침식사를 간단히 했다.
파키스탄도 인도 못지 않게 외환관리가 철저한 것을 알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달러가 본국 돈과 다름없이 자유롭게 통용되고 있었고 버마의 경우는 달러와 똑같은 가치로 표시된 CFC를 교환해 주고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네팔에서는 단속은 한다지만 외국 관광객들이 달러로 물건 사는 것을 예사롭게 볼 수 있다.
파키스탄은 환전할 때 여행자 수표를 굉장히 까다롭게 취급한다. 300개가 넘는 객실을 가진 대형 호텔에서도 현금은 받을 수 있지만 여행자 수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은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행안내소의 말에 의하면 은행에서도 힘들다고하여 가까운 은행을 남겨두고 카라치 시내에 몇 군데 있는지 모르지만 한참을 물어 찾아가서 지정된 환전소에서 겨우 바꾸었다. 그러나 물건을 살 때 달러 현금을 받는 것을 오히려 즐겨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외환 관리가 철저한 나라에서 그 나라 돈이 아닌 달러 등을 사용하는 것을 매우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환전하느라 한참 시간을 허비하였고 또 하나 불쾌한 것은 파키스탄에서는 호텔 카운터에서 여권을 맡기던지, 하루 숙박료를 선불하라는 것이다.
외국 관광객을 불신하는 것으로서 이 또한 이 나라 관광정책의 미숙성을 드러낸 것이다.
세계각국이 관광사업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실에서 파키스탄은 호텔안내서, 관광안내서, 지도 등 기본적인 준비도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파키스탄 카라치 공항에서 입국할 때 왜 서양인들이 모두 파키스탄을 통과나라로 하고 다른 문으로 나가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 1999년 7월 9127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