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인도기행(21)
< 히말라야 萬年雪을 바라보며 >
이윤희 (사학21회. 문학박사. 서일대학교수)
----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만년설의 히말라야에도
文明의 利器가 내뿜는 매연에 흐려지고......
아침에 커텐을 젖혀보니 잔뜩 찌뿌린 날씨다. 7시가 되어도 햇빛은 보이지 않고 흐릴 뿐이다.
아래층에 내려가 밖에 날씨에 서려 있는 것이 안개인가 구름인가 물어 보았다. 안개면 걷힐 것이고 구름이면 아니 걷힐 가능성이 있기에.
직원은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승용차를 알선하는데 급급하다. 시내 관광과 나가르코트까지 30불로 가능하다고 하면서 돈벌이에만 신경을 쓴다.
호텔에 딸린 커피숖으로 들어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 청년에게
“카투만두 날씨가 매일 이와 같은가?” 하고 물으니
“10시나 11시쯤이면 환하게 햇빛이 나타납니다. 만일 구름이 걷히지 않으면 히말라야는 보이지 않습니다.” 라는 설명까지 곁들여 준다.
어제 약속했던 택시기사가 9시에 찿아 왔으나 두시간 후로 연장해 놓고 쉬었다. 트래킹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일정의 여유도 가능하지 않고 인도에서 부다가야로 가는 밤기차의 차가운 밤바람으로 인하여 걸린 감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차선책으로 히말라야를 잘 볼 수 있는 나가르코트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나가르코트보다 히말라야를 더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지만 50킬로를 더 가야하고 하루로는 힘들다고하여 이곳을 선택했다.
2차선이라고 할 수는 없고 조그만 차가 서로 비킬 수 있을 정도는 되지만 구불구불 위험해 보이는 산 허리를 끼고 택시는 계속 오른다.
미처 몰랐는데 그곳까지 미니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산과 계곡에 군데군데 사람이 살고 있는 듯 아주 허름한 오두막집이 보인다. 몇 층으로 된 창문이 많이 만들어진 아담한 건물도 보인다.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쉬는 곳일까?
산 속에는 어른 팔뚝만큼 굵은 대나무 숲이 쭉쭉 뻗은 체 무리지어 있고 우리나라 소나무와 비슷한 나무들도 곧게 뻗어 올라가 있어 그 푸르름이 히말라야 계곡에 가득하다.
수량이 풍부해 보이는데 산 이어서 인지 밀 보리 밭이 많다. 어쩌다 계곡 아래로 보이는 지상이 까마득하여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나며 무섭기도 했다. 네팔인 운전기사에게
“천천히 올라가세요.” 라고 부탁 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었다.
차창 밖으로 멀리 아득하게 살짝 스쳐가는 히말라야 산 봉우리를 보면서 나는 스위스의 알프스를 잠시 연상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눈 덮인 산봉우리와 계곡, 양떼와 젖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언덕, 알프스 산 너머로 저 멀리 조을 듯이 흘러가는 구름, 그 목가적 정경이 떠오르고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계곡을 오르면서 두 산이 잠시 나의 머리 속에 오버랩 되는 것이었다.
히말라야에는 8천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14개 있는데 이중 9개가 네팔 국내에 있다. 해발 7천미터급 고산도 350여 개나 되니 이곳이야말로 세계의 지붕이 아닌가. 나는 산악인은 못 되지만 태고의 신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히말라야에 가까이 가보고 싶어졌다.
산스크리트 말로 눈(雪·히마) 과 집(말라야)의 복합어인 히말라야는 눈의 집이라는 뜻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의 네팔 말은 「사가르마타」이다.
에베레스트란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된 데는 인도의 슬픈 식민역사가 있다.
영국이 인도에서 식민정책을 펴 나가던 1892년 육군 측지부대가 지도를 만드느라 멀리 떨어진 변경 하늘 높이 솟은 히말라야 봉우리에 차례로 부호를 붙여놓고 삼각측량을 해나갔다.
마침내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영국은 그 최고봉에 「사가르마타」 혹은 「초오랑마」라는 네팔이나 티베트의 현지 이름을 무시하고 인도 측량국 초대장관을 지낸 육군대령 조지 에베레스트 이름을 따 「마운트 에베레스트」라고 명명했다.
네팔 산악에는 대부분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높이까지 사람이 살고 있다. 해발 5천미터까지 트래킹 하면서 숙식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심조심 산 벼랑에 붙어 오르던 택시가 멈춘다.
팔뚝만한 대나무 끝에 돌을 달아 무게를 주어 길을 막아 놓고 눈(雪)에 그을렸는지 모르지만 주름이 깊이 패인 노인이 통과세 5루피를 요구한다. 내려 올때도 다시 다른 곳에서 10루피를 받는다. 네팔식 봉이 김선달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선량한 인상에 선한 미소는 대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방금 지나온 제법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두 명의 서양 젊은이가 자전거로 오르고 있다. 만일 그들이 인도에서 국경을 넘어 네팔까지 자전거로 도전해 왔다면 대단한 젊은이 들이다.
일정에 여유가 있어 히말라야 산록을 트래킹 하면 좋을텐데 택시로 오르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산록에 난 길을 따라 오르면서 골짜기 구석에 팔베개를 하고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디오게네스인가! 설산에서 고행하는 성자인가!
드디어 히말라야 전망대 나가르코트에 이르렀다. 나가르코트는 설악이나 지리산 정상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가에 눈부신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장려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태고적부터 쌓인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히말라야, 침묵하고 있는 산과 계곡에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황량한 땅, 생존을 위한 산소마저 희박한 히말라야의 고봉준령들을 세계사람들은 왜 정복하려 드는가!
하늘과 땅이 입맞춤하는 세계의 지붕이어서 일까?
눈부신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땅 네팔의 나가르코트 언덕 위에서 에베레스트(8.848m), 로체(8516m), 노스콜(8393m), 사우스콜(7786m)을 헤아려 보고 있을 때 태양 빛은 히말라야 설산의 은빛나는 정취를 한껏 고조시켜 주었다.
감동적인 히말라야 산맥의 장관을 두루 바라보면서 얼마동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서 있는데 그 맑고 은빛나는 히말라야를 검은 구름이 점차 가리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검은 구름은 낮은 곳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듯이 퍼져 오르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것은 구름이 아니라 매연이었다.
밤에는 차량통행이 중지되었으므로 맑은 공기를 보이다가 아침이 시작되면서 카투만두의 고물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이 정오에 가까워지자 히말라야 산을 가리우면서 희미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세계 마지막의 무공해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히말라야가 문명의 이기라고 하는 자동차의 매연 때문에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온통 변하는 것 투성이인 인간세상 저 편 만고에 변함없는 자태를 보여주고 서 있는, 너무 황홀하여 신비스럽기도 한 히말라야에 빠져 마음마저 송두리째 빼앗긴 채 한동안 디오게네스가 되어버렸다.
과연 우리가 꿈꾸는 행복의 실체는 무엇인가 !
- 1999년 4월 (124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