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박주택
누구시지요?
불현듯 계절이 오고 계절이 사라지고 나면
숨을 쉬고 있는 그늘에는
다른 사람이 와서 쉰다
가지가 뻗는 편지처럼
누군가가 와서 쉰다
지내는 사람이 머물며
그늘에 새날이 온다는 것
귀를 기울여 소리에 깃들어 서로가 된다는 것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저 높은 하늘이 있고
고요가 있을 뿐
한 개의 나뭇잎도 떨어지지 않는
서로에게 깃든 그늘은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간다
박주택 1959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으며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꿈의 이동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시간의 동공'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 등 시집 발표. 현재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