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식-연극 9월6~11일


문화사랑방 노경식-연극<반민특위> 9월6~11일

작성일 2005-08-25

▲노경식 (경제58, 10회, 작가)

노경식 동문의 새 작품 <반민특위>가 극단 '미학'의 제13회 정기공연으로 대학로에서 공연된다.

-- 때 : 2005년 9월 6일(화) ~ 11일(일)
-- 곳 : 동덕여대공연예술센터 대극장 (대학로)
-- 주요출연 : 김명수 오지영 김경미 정상철 맹봉학 외 20여 명
-- 공연문의 : 011-283-5670, 017-290-3064, 02)571-1727

-- 노경식 동문은 2002년에 공연된 바 있는 <찬란한 슬픔>(극단 고향 박용기 연출) 이후 3년만에 <반민특위>를 집필했다. 이번 작품은 광복60주년 기념공연으로 한국문예진흥원의 창작공연활성화 지원작이고, 연출자는 '대극장무대 연출의 독보적 거목’인 정일성이다. 노동문은 "통한의 부끄럽고 실패한 역사를 새롭게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지대한 관심과 성원으로써 많이많이 극장을 찾아주시기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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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의) 1948년 대한민국의 수립은 비록 남한만의 반쪽정부라 해도, 일제의 혹독한 지배와 패망, 그리고 3년 동안의 미군정 끝에 비로소 탄생한 우리들의 축복이요 희망이었다. 그러므로 일제하의 반민족행위자 처벌이란 신생 공화국의 장차 있을 통일민족국가의 완성과 함께, 가장 큰 역사적인 당위이자 민족적 과업이었다. 그해 9월에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약칭 “반민법”)을 제정하고, 정부는 지체없이 이를 법률 제3호로써 공포하게 된다. 반민법의 대의와 목적은 일제의 40여 년에 걸친 부정적 유산인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친일파 매국노와 동족에게 고통을 안겨준 민족반역자를 척결하며, 둘째는 민족정기의 회복과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고, 셋째 사회정의의 실현과 가치관의 재정립 및 도덕성 확립에 있었다.
그러나 ‘반민특위‘의 활동과 임무는 여러 가지 방해공작과 미숙함 때문에 그 권위와 힘을 잃어버리고 심히 왜곡되어, 마침내 그해 9월 22일 ’반민특위 폐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무렵에는 특위 자체가 유명무실, 흐지부지 유야무야로 불과 10개 월만에 그의 죽음을 고한다. 반민특위는 모두 682건의 반민피의자를 조사하였으나 판결까지 간 것은 38건에 불과했고, 그 가운데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피의자도 12명에 그쳤다. 더구나 이들 역시 곧바로 풀려나고 만다. 결국 ’반민족행위처벌법‘ 해당자로 처벌된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꼴이다. 그것은 곧 조상한테는 한없이 죄스럽고 동족에겐 그지없이 부끄럽고 낯 뜨거운 과거사이다. 그리고 실패한 통한의 역사이자 오늘과 미래에 대한 굴레요 서글픈 멍에에 다름아니다. 역사학자는 말한다. 반민특위의 실패 원인은 1) 친일파 세력의 권력구조화와 이승만 정부의 방해책동, 2) 특위 조사위원 특별검찰부 특별재판부의 조직구성 및 자격의 문제점, 3) 반민특위 기관들 사이의 대립갈등에 의한 불협화음과 미숙성 등등 ----
이에 위의 역사적인 사실 등을 기초로 하여, 작가는 1949년의 반민특위 활동과정과 실패 및 그 현재적 의의를 추적하면서 일종의 정치드라마로 형상화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을 비롯하여 슬픈 과거사 청산을 위한 정부당국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및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등은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줄거리) 1949년 1월에 반민특위의 활동이 본격화하고, 종로의 유명한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이 검거 1호로 체포되면서부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장 최린, 고종 황제의 조카 이기용, 소설가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 일제때 만주 헌병대에서 악명 높은 밀대 이종형, 강우규 의사를 체포 사형시킨 ‘고문왕’ 김태석 등이 줄줄이 특별검찰부에 체포돼서 서대문형무소 등지에 구속 수감된다.
그러나 한편, 특위의 활동을 모략하고 방해하려는 세력들의 조직적인 음모도 집요하게 계속된다. 과거 일제시대에 주로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 등을 지낸 친일경찰로서, 어느새 미군정을 거쳐 새정부의 경찰간부 직에 올라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 일단의 세력이 바로 그자들이다. 서울시경 수사과의 현직경찰 홍택희가 직업 테러리스트 백민태를 찾아와서 김웅진과 노일환 등 국회의원 3인을 제거해 줄 것을 청탁하나, 백은 스스로 검찰에 출두하여 그 흉계를 폭로하고 만다.
그러고 또한 고등계 형사 출신인 ‘고문기술자’ 노덕술은 군정때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을 지낸 인물로서, 그가 특위에 체포되자 정부는 그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특위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른바 노덕술 등은 ‘공산당을 때려잡는 애국자’로서 둔갑하게 되며, 그를 체포 구속한 특위와 특위를 성원하는 국회의원들은 ‘공산당 앞잡이’로서 색깔을 덧씌워 매도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특위활동에 불만을 표시하고, 따라서 특위본부와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을 ‘빨갱이’로 규탄하는 관제데모가 연일 발생한다.
마침내 정부 고위층의 묵시적 내락을 받은 일부 친일경찰들은 그해 6월 6일 아침 7시에 특위본부를 불법적으로 틈입하여, 특경대의 무장해제를 실력으로 행사한다. 즉 특위위원들의 신변경호와 반민피의자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띄고 있는 특경대를 강제해산함으로써 특위 활동을 무력화하고 그의 손발을 잘라버린 셈.
그리하여 멋대로 자행되는 갖가지 형태의 고문과 악행들.
언론 취재를 맡은 젊은 정 기자도 무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그의 기자수첩을 한 장 한 장씩 찢어서 바람에 날려보낸다.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그 역사의 문서 쪽지들을 다시금 엉금엉금 힘들게 줍고 있는 배가 부른 만삭(滿朔)의 아내. ‘역사의 참담한 실패 속에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