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원 지음 《대학의 역사》

[한국대학신문 조영은 기자] 12세기 중세 유럽은 오랜 암흑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아가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고 남아도는 농산물을 위해 시장이 활성화 됐다. 도시를 중심으로 중세 유럽이 활력을 갖고 체계를 갖추게 되면서 성직자, 법률가, 교사 등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배움을 원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지식으로 교류와 소통할 수 있는 파리, 볼로냐, 로마, 살레르노 등 도시로 몰려들었으며 이는 도시에서의 대학을, 최초의 중세 대학을 이끌었다. 최초의 대학은 특정 시기, 특정 공간에서 설립되지 않고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이 지식의 권위를 인정받은 학자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확대되고 체계화됐다.
중세 대학은 교회가 독점하던 지식을 대학에 가져와 서양 학문의 발전을 이끌었다. 대학은 지식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세 유럽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됐다.
중세를 지나고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대학은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지 못했다. 학문의 체계, 교육 내용, 학부의 구성 등에 변화가 없었고 16세기 종교 분열은 대학을 더욱 경직시켰다. 학문은 철저하게 종교에 종속됐고 종교적 차이는 대학에서 배척당했다. 근대 사회의 발전을 견인할 과학 기술의 혁신이 대학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자연과학이나 기계공학을 연구하는 인력이 늘고 공간은 확대됐지만 대학에서는 오히려 외면당했다. 대학과 사회의 괴리는 대학을 위기로 몰아넣었고 19세기 국가가 대학 개혁의 주체로 나섰다.
18세기 이후 대학에서는 지식이 현실의 삶을 개선하는데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공리주의적이며 실용적인 교육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대학 개혁도 강력한 근대국가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데 초점을 뒀다. 정부와 산업을 이끌어갈 전문 인력 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국가는 대학 개혁을 위해 첫 째 프랑스의 사례처럼 대학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대학을 대신할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고자 했다. 두 번째는 독일의 경우처럼 대학의 기능과 역할을 완전히 혁신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해법이었다.
19세기 이후 각국 정부는 대학을 국가 발전의 도구로 여겼다. 군사력을 강화하고 산업화를 이루는데 관심이 많았던 국가는 대학의 과학과 기술 역량을 활용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각국 정부는 무기 생산을 비롯한 전쟁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학을 이용했다. 대학의 학자들은 각종 분야에서 자문을 제공했고 대학은 정부로부터 기금을 받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세기 최대의 전쟁은 20세기 대학의 판도를 흔들었고 이는 20세기 냉전까지 지속됐다.
냉전의 시대가 지나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세계사의 주요 흐름이 되자 대학의 모습 또한 변했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축소되자 각국의 대학들은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내몰렸다. 대학들은 더 이상 국가 발전을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교수들은 대학 내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다른 교수들과 경쟁하며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다른 학자들과 경쟁한다. 대학은 다양한 평가와 인증에서 좋은 순위를 획득하고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기금을 얻기 위해 다른 대학과 경쟁한다. 국가는 자국의 대학들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정책을 세우고 재정을 투입한다. 이렇게 자본의 지배 아래 놓인 그래서 시장에서의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학은 더욱 시장의 논리와 자금의 논리를 추종할 수밖에 없게 됐다.
책에서는 중세 대학 탄생 이전 서양 교육의 전통부터 21세기까지 대학의 모습을 살펴보며 중세 유럽에서 처음 출현한 대학이 천 년 가까이 존속하고 유럽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를 찾는다. 세계사의 흐름에 대학이 어떻게 반응했으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을 상세히 안내한다.
저자 남기원은 경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케임브리지 대학 종교개혁가들과 헨리 8세의 종교개혁, 1520-1547’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경희대에서 교사(校史) 편찬, 기록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양문화사강의》(공저)가 있으며 역서는 《역사의 격정》(공역), 《감귤 이야기》 등이 있다. (위즈덤하우스/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