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운영하던 86세의 엄마가 지난해 갑자기 쓰려졌다. 생활력 강하고, 활달한 분이셨기에 병상에 누워 쇠약해져만 가는 엄마의 모습에 딸은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날 때면 직접 손으로 뜬 수세미를 사람들과 나누곤 했던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기력이 없는 엄마에게 화가인 딸은 뜨개질을 권했다. 그가 색실을 사다주면 엄마는 이런 저런 색을 섞고 문양을 넣어 알록달록한 수세미를 떴다. 엄마가 뜬 수세미는 여기 저기 나눠줘도 쌓여갔고, 엄마와 2인전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우리 함께 전시할까?” 어느 날 던진 딸의 말에 엄마는 더 열심히 수세미를 떴고, 갯수는 1200여개에 달했다.
한국화가 류현자 작가가 엄마와 함께 ‘사모곡-마주보기’전을 오는 20일까지 갤러리 다온(광주시 동구 동계로 10번길 20-1)에서 열고 있다. 삶이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서로 마주 보며’ 의지하고 살았던 마음을 담은 전시다.
엄마 송홍남 여사가 뜬 1200개의 수세미는 전시장에서서 멋진 설치 작품으로 변신했다. 류 작가는 엄마의 수세미를 ‘버선’ 모양으로 배치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버선 작업은 늘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종이 버선을 올려둔 뒤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던 엄마의 뒷모습에서 시작됐다. 그의 작업은 세상 모든 어머니에 대한 헌사이기도하다.
“엄마가 쓰러지고 나시니, 새삼스레 엄마가 여자로 보이더군요. 7남매 키우며 일과 집밖에 몰랐던 엄마셨어요. 수세미를 전시장에 모아두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단순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죠. 엄마가 색깔을 이렇게 저렇게 배합해 떠낸 수세미들이 한 데 모이니 근사한 작품이 됐네요.”
전남대 예술대학과 경희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25차례 개인전을 연 류 작가의 작품 속에 흐르는 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늘 희생했던 어머니의 삶은 작품의 주제가 됐고, ‘사모곡’ 시리즈를 통해 진화해왔다. ‘사경(寫經)’을 주제로 작업을 시도했던 것도 역시 어머니 영향이다. 어느날 밤, 어머니가 연필에 침 묻혀가며 불교 경전 ‘금강경’을 한자 한자 써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본 그녀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자 사경을 시작했고, 그림과 배치해 작품으로 완성했다.
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전통 버선의 조형미와 함께 어머니를 포함한 세상 모든 여성의 삶을 담은 연꽃과 목련 등 다채로운 꽃이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오방색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작업을 진행해온 그녀의 작품은 부드러운 전체 바탕 색과 다완, 토기, 연꽃, 버선이 어우러져 색다른 느낌을 전한다. 또 색색의 물결 모양 띠와 다완, 연꽃과 버선이 어우러진 화폭은 다양한 감정을 전달한다.
| 류현자 작 사모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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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품에 등장하기 시작한 오방색의 ‘띠’는 인간사의 희로애락과 명상, 삶의 흐름을 표현하는 장치다. 앞으로 추상성을 더 가미해 ‘아리랑’ 연작 시리즈를 시작해 볼 참이다.
그의 작품에는 분채가 주는 매력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지에 열번 가까이 색을 바른 작품은 자연스러운 색의 겹침이 만들어지면서 아련한 느낌을 전해준다.
“엄마가 오랫동안 쪽머리를 하시고, 버선을 신으셨는데 수년 전 다리를 다치시고 나서는 버선을 신지 못하셨어요. 엄마가 정성스레 뜬 수세미를 버선 모양으로 설치하고 나니 엄마에게 좋아하는 버선을 신겨드린 듯해 기분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