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방영한 드라마 「미생」의 등장인물 한석율은 프레젠테이션 전세를 역전시키는 상황에서 이렇게 말한다.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응용학문 분야 연구자에게도 이 대사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현장과 연구 사이의 거리감, 오늘의 이야기는 이 지점에 있다.
나는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회사에 다녔다. 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 협회 등에서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했다. 현장에서는 관(官)의 입장으로 실무를 수행하고,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매진했다. 진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여유도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프로젝트 경험이 쌓여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야 나는 민(民)의 입장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보게 됐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제도적 한계도 보았다. “왜?”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나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관의 입장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이 두 입장 사이에 껴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을 지닌 채 학교에서 배움의 시간도 흘러갔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은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만남을 통해 이미 그들이 해내어 온 것, 도움이 필요한 것, 바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발라낼 줄 알게 되었다. 연구 과정에서 성숙한 시선을 배울 수 있었고, 연구가 필요한 지점이나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마주하게 될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과정에서 한 명의 연구자이자 인간으로서 성장의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속을 막론하고, 학부 졸업 후 바로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연구자 중에는 교수님(또는 필드의 전문가)의 외형만을 그대로 모방하는 사람도 있다. 몇십 년간 연구를 한 교수란, 동시에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상당한 경험의 소유자였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 대부분을 알고 있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따라 연구자, 참여자, 연구대상자, 이해관계자에게 어떻게 당근을 줘야 할지, 채찍을 줘야 할지 감이 오는 것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물로서 껍데기뿐인 윤곽만을 빠르게 흡수한 일부 연구자들은 현장의 일 또는 현장의 이야기 범위를 아주 빠르게 축소하고, 일부 과정들을 생략한다. 더 나아가 만나는 사람의 지위 고하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통탄할 일도 종종 있다.
수많은 인생 선택지 중에 한순간이라도 연구의 길을 선택한 사람의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쌀알만큼이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속한 공동체에 가치 있는 일이 되고, 이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라는 공공선의 씨앗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이 뭘 얼마나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 실무담당자들이 밤새워 가면서 사업을 수행해나갈 때, 연구자들 역시 밤새워 가며 선행 연구와 법적 해석을 검토하고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해 현장에서 이것이 왜 필요한지를 증명해낸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산업 전략은 수정 보완하고, 현장의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거대한 프로젝트가 기획될 수도 있다. 현장과 연구는 이어져 있다. 연구는 현장을 더 나아지게 하고, 현장은 다시 연구가 필요한 지점을 제공한다.
학문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연구 분야에서는 현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연구자의 연구는 방향을 잃고, 활용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연구가 현장을, 현장이 연구를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의 연구, 우리의 연구가 있을 곳은 사라진다.
현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삶의 의외성은 우리를 얼마나 깨닫게 해주는가. 우리에게는 결과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의 과정을 짚어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공동체의 삶과 밀접한 연대와 협력의 장을 만드는 것도 연구의 목적이기도 할 것이다.
반서연 경희대 컨벤션전시경영학 박사수료
경희대학교에서 컨벤션전시경영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주로 지역 문화관광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으며, 다수의 지역문화재단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지역관광과 지역관광추진조직(DMO)에 관심이 많으며 최근 로컬에서 일어나는 흐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