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리-도서와 출판에 대한 단상


동문기고 한주리-도서와 출판에 대한 단상

작성일 2007-05-29

<밥일꿈> 도서와 출판에 대한 단상

- 한 주 리 / 경희대 BK21 연구박사 -

후배에게 물었다. “출판업하면 생각나는 게 뭐야?” 후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박봉에 야근이 많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렇다. 국내 출판산업에 대한 인식은 주로 미디어를 통해 생산된 바가 적지 않다. 후배의 생각처럼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출판산업은 여전히 영세한 산업이다. TV 속에 등장하는 출판사는 작가의 원고를 고쳤다는 이유로 불호령을 감수해야하는 편집자들이 추운 사무실에서 손을 비벼가며 일하는 곳이며, 뿔테안경을 쓴 노처녀나 노총각이 박봉과 야근으로 인해 파김치가 되어 있는 곳쯤으로 비춰지기 일쑤다.
하지만 파주에 있는 출판도시(Book city)에 다녀오면 이런 생각은 이내 사라진다. 파주출판단지라는 검색어를 치면 ‘국내 최대의 건축전시장’이라는 표현으로 이 곳을 소개하고 있는 블로그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도서라는 알맹이보다 건물이라는 겉껍데기에 대한 감탄일색에 입맛이 개운치 못하다.
사실상 출판산업은 지식정보의 핵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영화 중에’반지의 제왕’,‘해리포터 시리즈’, ‘다빈치 코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계인이 열광한 영화 속 무한한 상상력은 바로 한 권의 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서를 통해 영화, 드라마, 캐릭터 상품개발 등 파생상품이 개발되고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매체 연계 및 다중 산업 연계라는 문화콘텐츠의 다중 유통방식은 문화콘텐츠의 원형으로서 출판콘텐츠가 갖는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파주출판단지의 화려한 등장 뒤에는 여전히 책 만드는 데 여념이 없는 출판업 종사자들, 제2의 창조자라는 이름으로 매우 적은 번역료에 만족해야 하는 번역가들, 단가협상에서 늘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주거래자들이 있다. 파주출판단지가 출판업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달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면 이제 출판업계 종사자와 아웃소싱 거래자들이 실질적인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할 차례다.
책을 만드는 작업이 기획에 기반한 창조력을 필요로 하기에 자신이 하는 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가 여타 산업에 비해 더욱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판산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사람이 없다는 탄식만 하기보다는 신입인력을 위한 출판(문화)대학원대학을 설립함으로써 진입장벽이 높은 출판산업으로 신규인력이 들어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면 출판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출판현장과 독자로 일컬어지는 소비자, 정부와의 관계 등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실시하고 업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산학협력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출판기획을 통한 세상 읽기라는 씨앗을 열매맺게 할 여건이 조성되어야 할 시점이다.

[내일신문 2007-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