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언-화성(華城)에서 꾼 꿈


동문기고 김동언-화성(華城)에서 꾼 꿈

작성일 2007-05-29

화성(華城)에서 꾼 꿈

- 김동언 /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

경기도 문화의 전당이 제작한 창작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가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막이 올랐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 그리고 건축을 주도한 정조 대왕을 소재로 한 이 뮤지컬에는 실학의 자긍심과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제작의지가 담겨 있다. 작년 초연 작품을 수정 보완하여 다시 올리는 작업이 우리 공연예술계의 열악한 여건을 감안한다면 그리 순탄하지 않았을 텐데도, 귀한 예산을 다시금 투자한 이 글로벌 프로젝트에 박수부터 우선 보내고 싶다.
그동안 국내 뮤지컬 시장은 양적, 질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하였고, 다른 공연예술에서는 볼 수 없는 자본의 직·간접 투자로 거의 대부분의 유명 해외 뮤지컬 작품이 국내 무대에 선보이는 등 완벽한 문화산업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 뮤지컬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형적 화려함 뒤에 감춰진 초라한 현실이 공연예술의 앞날을 그리 밝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연간 100편 이상의 뮤지컬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지만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은 소위 외국의 명품 뮤지컬 몇 편에 불과하고, 주목할 만한 창작 작품을 찾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본으로 하는 공연예술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래서 음악이나 안무, 그리고 극적 구성 등의 면모를 보면 서양의 사실주의적 근대극의 형식을 빌려서 작품을 만드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한 작품들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적 움직임과 소리를 연극의 중요한 화두로 붙들고 꾸준한 성과를 보여준 연출가 이윤택과 경기도 문화의 전당의 이번 작업은 그러한 면에서 주목해 볼 때 매우 환영할 만하다. 이윤택은 국립창극단과 함께 창작 창극 <제비>를 통해 한국적 뮤지컬의 가능성과 보편성을 꿈꾸었고, 독일 공연을 통해 현지 유력지와 평론가, 관객들에게 그러한 꿈을 실제로 입증한 바가 있다. 그러한 면에서 다소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소재와 한국적인 뮤지컬과의 만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개혁군주 정조가 실사구시와 실용주의의 결집인 화성을 축성하면서 새로운 문명세계를 꿈꾸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한국 뮤지컬에 대해서 어떤 꿈을 가질 것인가? “외국 라이선스 작품을 가져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악보도 그대로, 의상도 그대로 하라고 강요당하는 것이 얼마나 굴욕적인가. 집단의 에너지는 다르다. <화성에서 꿈꾸다>는 세상에 대한, 공연계에 대한 저항이다. 개인적, 파편적 세상에 대한 경고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공연 예술인의 자존심을 걸고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이윤택의 꿈이다.
장예모 감독의 연출로 오페라 <투란도트>가 중국의 자금성에서 공연되었을 때, 그 자체로 세계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2003년에는 그 작품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다시 재연하여 대형 야외 공연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이제는 우리의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가 제작 초기의 의지대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성장하기 위해 지속적인 보완을 이루면서 세계인의 문화유산인 화성이 배경이 되고 무대가 되는 명작 야외 뮤지컬 공연이 되기를 기대한다. 따스한 햇살의 주말, 화성을 따라 걸으며 꾸어본 필자의 꿈이다. 화성에서 꾼 꿈!

[중부일보 2007-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