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남북관계의 정략화를 경계한다


동문기고 정진영-남북관계의 정략화를 경계한다

작성일 2007-05-25

<포럼> 남북관계의 정략화를 경계한다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2·13 베이징 합의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길고 험난한 길의 첫발을 뗀 것이다.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6자회담의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제일 첫 단계의 조치를 북한이 취하기로 약속하 고 이에 상응하는 지원을 다른 당사국들이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 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국면이 조성되고 핵 폐기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의 목표는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에 있 으며, 이를 위한 매우 어려운 협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망 각해서는 안 된다. 북핵 문제를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은 여기에 있다.

그런데 2·13 합의 이후 노무현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매 우 이념적이고 국내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북한에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2·13 합의가 발표도 되기 전에 남북장관급회담 개최가 합의되고, 북한이 초기단계 조치를 취하 기도 전에 쌀과 비료의 지원이 사실상 합의된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산가족 화면상봉을 위한 시설 도입 지원을 명분으 로 금기시돼 오던 현금 지원까지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 전개를 두 가지 점에 서 우려한다.

첫째, 6자 회담의 틀을 벗어난 남북관계의 진전과 대북지원이 자 칫 북한의 핵폐기 필요성에 대한 자각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북한 지도부가 정말로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까지 가기 로 결심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지금 단계에서는 알 수가 없다. 그 저 각자의 입장이나 희망적 사고에 기초한 추측과 주장이 무성할 따름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그러한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자신의 핵 프로그램 폐기를 위한 6자회담에 임하고 이를 위한 초기단계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이유는 국제사회의 제재 를 피하고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미국, 일본 등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북한 체제에 대한 외부의 위 협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만약 핵을 폐기하지 않고도 그러 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북한 당국으로서는 최고의 결과를 얻는 셈이다. 우리의 대북 지원이 북한의 핵 폐기 조치와 행동 대 행 동으로 상호주의적으로 연계돼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 다. 미국은 핵을 가진 북한이 확산만 하지 않는다면 같이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하다.

둘째, 집권 세력의 국내 정치적 필요성에 따른 대북 접근이 남북 관계의 정치화와 국민 분열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현 재 ‘여권(與圈)’은 정권 재창출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고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이러한 반전을 위해 ‘여권’이 사용할 가장 중요한 카드 가운데 하나로 남북정상회담을 꼽고 있다. ‘여권’은 당연히 이를 부인하겠지만 국민의 인식은 그러하다.

현재 남북한의 집권 세력은 최소한 한 가지 목표는 공유하고 있 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승 리를 막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발전이 퇴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남북관계의 국내 정치화가 남북 관계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대선이 있는 해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선거용이 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대통령이나 북핵 문제 실무 책임자 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정상회담 을 하려면 그 대가로 무엇을 지원할 게 아니라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에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북한이 위반한 데 대한 책임부터 엄중히 묻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2007-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