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김찬규-황사, 中에 책임 물을 수 없나
[시론]황사, 中에 책임 물을 수 없나
- 김찬규(박사과정 22회) /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
우리나라에서 벼가 자라 이삭이 나올 때면 벼멸구라는 해충이 번져 벼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멸구는 ‘멸오’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 중국 오나라에 해충이 창궐해 곡식을 먹어버려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그 해충 이름을 멸오라 했다는 고사가 있다. 이 해충이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 건너와 벼멸구가 되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유해물질 중 으뜸은 황사이다. 봄철이 되면 편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황사로 우리나라는 해마다 큰 피해를 보고 있는데 황사의 영향권 내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도 들어가며 태평양 건너 멀리 미국 LA에서도 황사가 검출됐다는 보고가 있다. 문제는 황사에 섞여 실리콘, 구리, 카드뮴, 납 등 중금속이 날아온다는 데 있다.
황사는 눈병, 피부병, 호흡기 질환 등을 유발하는 데 그치지만 중금속은 체내에 축적돼 온갖 신체적 장애를 일으킬 뿐 아니라 생명까지 앗아가는 치명적 독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 중국에는 랴오둥반도에서 상하이에 이르는 긴 해안 지역에 20개가 넘는 대형 경제특구가 있는데 그곳에 세워진 수많은 굴뚝에서 쉴 새 없이 연기가 분출되고 있다.
황사는 자연현상이지만 거기에 섞인 중금속은 인위적 산물이다. 자연현상은 자고로 ‘신의 조화’로 분류돼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으로 인정됐지만 인위적 결과는 사정이 다르다. 중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왜 우리가 희생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 측에도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은 경제개발을 위해 자국 내에 경제특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경제특구를 만들었다면 거기서 매연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한국 쪽으로 가는 것은 바람 때문이지 중국의 고의과실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 등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태에 직면해 수수방관만 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1896년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부근 캐나다령 ‘트레일’에 제련소가 건설되었다. 납과 아연을 정제하던 이 제련소에서는 아황산가스가 배출되고 있었는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1925년과 27년 2개의 거대한 굴뚝을 더 쌓아 공장을 가동하자 아황산가스 배출량도 더 늘어났다. 그것이 기류를 타고 미국 워싱턴 주 일대의 삼림과 농작물을 망치자 두 나라 사이에는 분쟁이 일어나고 미국의 손해배상 요구에 캐나다는 적법한 영역 이용의 결과라면서 책임질 수 없다고 맞섰다.
분쟁은 양국의 합의에 의해 중재재판에 회부됐는데 38년 4월16일 나온 중간판결에는 다음과 같은 일문이 있다. ‘국제법 및 미국법의 원칙상, 사건이 중대한 결과를 낳고 또한 손해가 명백하고도 확고한 증거에 의해 입증되는 경우에는 여하한 국가도 타국의 영역, 그 안에 있는 재산 또는 사람에 대해 매연으로써 손해를 야기하는 방법으로 자국 영역을 이용하거나 이용을 허가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권리 남용의 법리에 근거를 둔 이 판결은 그 후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에서도 연이어 원용됐으며 지금은 국제 환경법, 특히 월경 오염 규제의 법적 근거로 돼 있다. 이 판결을 황사 문제에 적용하면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황사는 그것이 ‘신의 조화’이기에 중국에 책임추궁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황사에 섞여 날아오는 중금속 등 유해물질에 대해서는 책임 추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 경우,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는 사건이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명백하고도 확고한 증거’에 의해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과 과학적 자료의 축적이 긴요하다. 이것은 사인이나 사적 단체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일보 2007-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