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재욱-역주행한 규제일몰제와 국가경쟁력
<포럼> 역주행한 규제일몰제와 국가경쟁력
- 안재욱(경제75/28회) / 경희대학교 교수·경제학 -
적어도 15세기까지는 중국이 서양보다 훨씬 잘살았다. 1299년에 출판된 ‘동방견문록’에서 중국문명에 대한 마르코 폴로의 찬탄 을 봐도 그렇고, 나침반·화약·종이 등이 중국으로부터 서양으 로 건너간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405년부터 1431년 7차 대항해를 통해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동아프리카까지 원정을 한 명나라의 정화함대와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1492년 아메리 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함대를 비교해 봐도 그렇다.
정화함대의 경우 선단 규모가 200여척에 승무원이 2만7000명이며 , 주선의 경우 2500∼3100t 규모로 탑승인원이 500여명에 달했던 반면, 콜럼버스 함대는 200∼250t에 지나지 않는 기함 산타마리 아호를 포함한 3척에 승무원 120명에 불과했다. 정화함대가 항공 모함이라면 콜럼버스 함대는 작은 고깃배 수준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18세기부터 사정이 역전됐다. 유럽의 생활수준이 중국을 앞서기 시작했고 그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결국 중국은 유럽 국 가들의 식민지에 이르게 된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1525년에 중국 정부는 모든 ‘큰 배’ 를 만드는 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규제를 발표하며, 해상무역의 구역과 해상 출항을 엄격히 통제하는 등 상업 활동을 제한했다.
명에 이은 청 왕조도 대외무역과 상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고수 했다. 이것이 중국 쇠퇴의 결정적 원인이다. 반면 네덜란드와 영 국 등 유럽국들은 사유재산권을 확립, 보호하고 기업의 국내외 활 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것이 국민들의 창의력과 기업 활 동을 자극하여 산업혁명을 일으켜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비춰볼 때 현재 우리나라 사정도 매우 우려된다. 규제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 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규제등록건수’를 보면 규제위원 회가 설립됐던 1998년 1만468개에서 1999년 말 7128개로 줄었다 가 다시 늘기 시작하여 지난해 말 8084개가 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 들어 증권집단소송제 도입, 사외이사 의무비율 강화, 용도지 역 내 행위제한 강화, 주택 재건축사업 규제 강화, 비정규직법안 등의 기업 관련 규제가 대폭 늘었으며, 사립학교법 개정, 재건 축 아파트에 대한 개발부담금제 추진, 출자총액제한제 유지, 종 합부동산세 등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규제가 대거 늘었다.
게다가 규제 신설시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그 타당성을 검토한다 는 ‘규제일몰제’는 있으나마나 한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 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규제일몰제 시행 평가와 개선방향’에 따르면, 1998년 규제일몰제 도입 이후 신설된 규제 2549건 가운 데 존속기한이 설정된 경우는 1.9%인 48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이후 149건의 규제가 신설됐지만 규제일몰제가 적용 된 사례가 한 건도 없다.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 정부 규제는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는 사 유재산권과 자유경쟁을 보호하는 데 그쳐야 한다. 이 범주를 벗 어나는 규제는 시장을 왜곡하고, 자원을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 는 것을 방해하여 경제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장기 침체에 빠져 있으며 국가 경쟁력이 갈수 록 약해지고 있다. 기업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실업률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과다한 규제 로 인해 기업의 투자와 기업가의 활동이 둔화됐기 때문이다. 따 라서 과거 중국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기업의 투자 증가와 기업가의 왕성한 활동을 통해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 찾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폭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규제 완화는 구호가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 정 부가 더 이상 미적거려서는 안 된다.
[문화일보 2007-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