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섭-세종학당 계획’ 성공하려면


동문기고 김중섭-세종학당 계획’ 성공하려면

작성일 2007-05-14

[오피니언] ‘세종학당 계획’ 성공하려면       

- 김중섭(국문 77/29회) / 경희대 국문과 교수·국제교육원장 -
 
최근 언론들은 중국과 일본의 자국어 해외 보급 경쟁을 ‘언어 전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두 나라 언어 보급 경쟁의 배경과 현실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스페인의 문호 카밀로 호세셀라는 “앞으로 세계 언어는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국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지거나 지역 방언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향후 100년 이내에 전 세계 5000~ 7000개의 언어 중 90퍼센트가 사라질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화 시대, 이제 ‘언어 전쟁’은 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우리 정부는 ‘세종학당’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골자는 한국어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국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2011년까지 세계 각지에 100개의 ‘세종학당’을 설립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일본에 이어 ‘조용한 언어 전쟁’의 격전에 뛰어든 셈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과 한류의 확산으로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고조된 시기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한국어 보급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시의 적절해 보인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한국어 교육에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현재 한국어 해외 보급과 관련한 업무는 외교통상부, 문화관광부, 교육인적자원부 등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다. 이를테면, 한국어능력시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한국어 교육능력 인증시험은 한국어세계화재단이, 그리고 이번 ‘세종학당’은 국립국어원이 맡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은 1987년부터 ‘국가 대외 한어교육 지도팀’을 장·차관급으로 구성해 중국어의 해외 보급을 체계적으로 진행해 왔다. 중국어를 세계 2대 언어로 만든다는 목표 하에 진행된 이 사업의 결과가 바로 125곳이나 되는 ‘공자학원’이고, 중국어 열풍이다. 이미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중국어가 외국어 교육 시장을 선점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문화 홍보와 언어 정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의 경우는 외무부 산하의 문화총국에서 220개국 1300곳의 ‘알리앙스 프랑세스’(프랑스어 교육 기관)와 100개국 150곳의 문화원을 총괄하고 있다. 그리고 대외홍보협력기구를 통해 정부 부처 간의 중복 행정을 지양하고, 민간 기구를 참여시켜 민관 합동으로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그 결과 관광 산업 못지않게 수익성을 올리고 있다.

언어 사용자 수만 놓고 비교할 경우 프랑스어와 우리말은 순위에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전 세계 문화어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는 프랑스어의 위상은 우리말과는 사뭇 다르다. 제국주의시대 식민지 동화 정책의 부산물로 보는 부정적 평가도 존재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프랑스어의 국제적 위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말 세계화에 이르는 길은 아직 멀다. 가뜩이나 부족한 재원과 인적 자원을 통합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말 세계화란 단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번 ‘세종학당’ 사업을 계기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통합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조선일보 2007-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