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의 목요칼럼>
바둑과 장기의 교훈
안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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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끓고 있는 물에서 미꾸라지가 자기 딴에는 살고 싶은 마음에 찬 두부속을 뚫고 들어가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리석은 삶을 산다. 아등바등 몸부림치며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요즘 들어 각 정당·단체에서 거론되고 있는 대선주자들, 특히 모 당(黨) 대선후보들이 경선룰을 가지고 이리저리 자신의 유·불리를 재면서 서로가 다투는 모습을 보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제 죽을 자리인 줄도 모르고 찬 두부속으로 들어가는 미꾸라지를 닮은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경제침체에 이어 정치 부재로까지 확산된 이 나라 국민은 지금 미로(迷路)의 한 가운데 놓여있다. 일부 그릇된 노(老) 정치 지도자의 과욕과 실책(失策)으로 기존의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이 허물어지고 다양하고 새로운 대안들이 제시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등 갈등을 느끼게 하고 있다.
유일하게 이 지구상에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대한민국 땅에서 사는 우리 국민은 몇 달 남짓 남은 대선을 앞두고 사회변화에 보다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지역분파, 정당, 학연, 지연으로 무조건 선택하는 자비심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지난 보선으로 치러진 모 지역 국회의원 선출 같은 어리석은 국민이 또다시 나와서는 안된다.
다소 늦었지만 이 나라를 정녕 위하고 지키겠다고 한다면 어느 것에나 치우치지 말고 공정한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며 인정을 베풀다 건국 백년도 안된 대한민국을 빼앗기는 국민이 될 수는 없다.
나라의 흥망은 우리 국민이 어떤 사고를 갖고 옳고 그름을 가름하느냐에 달렸다. 어떤 지도자를 선택하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참 지도자를 자처하며 대선주자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그들을 추종하는 그룹·집단을 보면서 문득 장기와 바둑과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기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길로 가면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만이다. 그런 장기는 알마다 크기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다. 또 계급도 있어 그 계급에 따라 일정한 법칙과 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졸(卒)이나 마(馬), 상(象), 포(包) 등은 마치 보디가드처럼 온몸을 던져 왕(王)을 잡으려고 몰려드는 무리들을 막아내야 한다. 모든 알들이 다 살아 있다 해도 왕(王)이 잡히면 게임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알들이 죽어도 무조건 끝까지 왕만 살리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 현시대 정치가 바로 이 같은 ‘장기 조직’과 같은 체제로 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어리석은 한 사람의 지도자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이다.
이제는 이 같은 ‘장기 체계의 조직’에서 탈피해 ‘바둑체제의 조직’으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그리고 크기도 똑같으며, 특정한 자리도 없지만 역할은 모두 같다.
단지 바둑알은 자기 자신이 놓이는 자리가 자기자리이다. 그래서 우선은 자기 자신부터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바둑일지라도 혼자는 살 수 없다. 짧던 길던 반드시 다른 바둑알들과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한 개의 집이라도 만들어 놓아야 전체가 산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서로 서로가 이어져 ‘생존의 띠’를 만들어야 죽지 않고 모두가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허점을 보여 알이 끊어질 경우 아무리 길게 바둑알이 이어져 있다해도 모두가 전멸을 당할 수밖에 없다.
장기나 바둑을 둘 때 특징은 대진하는 사람보다 옆에서 관전하는 하수(下手)가 더 넓게 보고, 죽고 사는 길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 만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더 높이, 더 넓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전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짓기는 생각조차 못하고 상대만 죽이려는데 급급하다 보니 자신이 죽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게 된다.
오늘의 정치도 장기나 바둑을 두는 것 같다. 관전하는 국민들은 답답하고 한심스럽기만 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도 중요지만 자신의 됨됨이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 정치지도자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밥상이 다 차려진 한나라당이 ‘룰’을 놓고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선후보 선출은 당헌·당규에 따라 하고, 그 후 국민은 투표로 의사표시를 하면 되는데 자꾸 당헌, 당규를 무시하고 자기 잣대에 맞게 하려다보니 좋지 않게 비춰지는 것이다. 격앙된 모습이 보기에 안 좋다.
물론 경쟁심 때문에 주변에서 하는 말이 잘 안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가 되려면 귀를 넓게 열고 잘 듣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참모들을 자제시키고, 그들에게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흥분은 금물이다. 다른 상황이면 충분히 알 사람들인데 정작 당사자가 되면 욕심 때문에 안들리고 안보이는 모양이다. 오늘의 정치인들을 보면 찬 두부속으로 숨는 미꾸라지를 보는 것 같다.
국가 지도자가 감정과 감상에 의해 뽑히면 나라는 거덜날 수밖에 없다. 또다시 어부지리 대통령을 뽑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두 번의 경험으로 족하다.
좌우이념과 남녀 성대결로 치열한 접전을 벌인 프랑스 대선 좌파 루아얄의 이념과 분배보다 우파 사르코지의 먹고사는 문제를 선택한 프랑스를 거울로 삼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