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악플, 없앨순 없다 줄일순 있다


동문기고 민경배-악플, 없앨순 없다 줄일순 있다

작성일 2007-05-11

[커버스토리]악플, 없앨순 없다 줄일순 있다   

- 민경배 /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
 
악플러들은 개그우먼 김형은씨와 가수 유니씨의 죽음까지도 자신들의 놀잇감으로 삼았다. 이를 계기로 극에 달한 악플의 해악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들이 다각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최우선으로 주목받는 것이 인터넷 실명제다. 이미 지난해 12월 인터넷 실명제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올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실명제를 통해 악플은 근절될 수 있을까? 눈 딱 감고 5개월만 버티면 악플 없는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기대해도 좋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터넷 실명제는 악플이 ‘익명성’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한 발상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이와 다르다. 악플의 최대 집결지라 할 수 있는 주요 포털의 뉴스 게시판, 싸이월드 미니홈피, 방송사와 언론사의 게시판은 이미 이름 석자를 걸어야만 댓글을 올릴 수 있거나, 최소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서 등록된 고유 아이디로만 댓글을 달도록 돼 있다. 사실상의 실명제 공간인 셈이다. 그동안 신문 지상을 오르내렸던 수많은 악플 사건들도 대부분 이 실명제 공간에서 벌어졌다.

악플은 익명성과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따라서 실명제를 도입해봤자 별 효과가 없을 것임은 충분히 경험으로 입증된 셈이다. 실명제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이 악플이 쌓여있는 게시판만 한번 미리 살펴봤어도 이런 쓸데없는 법안 만드는 수고는 덜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명제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이 70%가 넘는다고 하니, 실명제가 마치 구원의 메시아와 같은 종교적 신념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하여 또 한번 안타깝다. 실명제라는 메시아는 환상일 뿐이다. 악플의 횡포에 시달리는 선량한 네티즌들은 메시아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원에 나서야 한다.

마침 스스로 구원에 나선 네티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블로그에서 악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으며, 포털 게시판에 악플이 올라오면 악플러의 도덕성을 지탄하는 또 다른 댓글을 달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우려된다. 악플을 악플로 응징하는 폭력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악플을 몰아내자는 좋은 취지의 움직임이 오히려 악플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 걱정이다.

아예 댓글 공간을 없애자는 소리도 나온다. 가장 원초적인 해결 방법이다. 하지만 마치 학원폭력이 기승을 부린다고 해서 아예 학교 문을 닫자는 발상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악플러는 극소수다. 지난해 네이버와 다음이 각각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월 1회 이상 댓글을 단 사람은 전체 회원 중 약 0.8%에 불과하다. 물론 이들 모두가 다 악플러는 아닐 것이다. 결국 실제 악플러는 정말 한 줌도 안되는 극소수인 셈이다. 그런데 극소수의 악플러들 때문에 99%가 넘는 선량한 누리꾼들이 댓글 공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좀더 뾰족한 대안은 없을까? 일단 댓글을 꼭 게시판에 써야 한다는 발상을 버리면 한 가지 대책이 떠오른다. 게시판 대신 포털 회원들에게 자동으로 공급되는 개인 블로그를 댓글 공간으로 이용토록 하는 것이다. 공동의 공간으로 생각되는 게시판에는 쓰레기도 버리고 낙서도 함부로 하지만, 자기 블로그를 악플로 더럽힐 누리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몇몇 포털에서는 게시판 댓글과 블로그 댓글을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누리꾼들이 게시판 댓글에 익숙해져 있고, 블로그 댓글은 다소 번거롭게 여겨서 별로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포털이 기존 댓글 게시판을 과감히 버리고 트랙백을 통한 블로그 댓글을 보다 간편한 방식으로 제공한다면 악플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누리꾼들의 자성 노력도 요구된다. 악플 때문에 자유로운 글쓰기에 제한을 두려는 실명제와 같은 규제 전략, 그리고 악플을 악플로 응징하거나 댓글 공간을 없애자는 폭력적인 방법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오히려 침묵하고 있는 99%의 선량한 누리꾼이 양질의 댓글을 많이 써서 악플을 도태시키려는 능동적이고 평화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비록 지금은 극소수의 악플러들에 의해 오염되어 있지만 그래도 댓글 공간은 선량한 누리꾼들이 되찾아야 할 소중한 공론의 장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07-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