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김찬규-국제법 짓밟는 탈북자 강제송환
[시론]국제법 짓밟는 탈북자 강제송환
- 김찬규(박사과정 22회) /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
최근 중국이 탈북자에 대해 강제송환으로 대응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탈북자를 강제송환함에 있어 중국은 언필칭 국제법과 인도주의에 따른 조치라고 하는데 그들의 조치가 과연 국제법과 인도주의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1998년 7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중국 공안부 간에 ‘국경지역에서 국가의 안전과 사회질서 유지사업에서 호상 협조할 데 대한 합의서’라는 문건이 채택된 바 있다. 총 10조35개항으로 된 이 문건에는 북측을 대표한 이항엽(李恒燁) 중장과 중국 측을 대표한 리지저우(李紀周) 부부장이 서명했는데, 실질적으로는 86년 8월에 채택됐던 같은 표제의 문건을 개정한 것이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방에서 범죄를 범하고 타방으로 도주한 자 둘째, 여권 또는 통행증 등 적법한 증명서가 없이 국경을 넘어 간 자 셋째, 적법한 증명서의 소지자라 할지라도 지정된 출입국관리 기관을 경유함이 없이 입국한 자는 적발하는 대로 즉시 송환해야 한다. 무기나 폭발물 등을 소지하고 상대방으로 도주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해서는 사진과 인적사항 등 관련 자료를 통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군인의 무장탈영에 대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문건에는 ‘국경질서를 위반한 자’가 쌍방 경비대 또는 공안의 생명에 위협을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격을 가하거나 군견을 풀어 놓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포함돼 있다.
대부분 탈북자는 위에서 언급한 두번째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이 문건을 근거로 중국은 탈북자를 적발하는 대로 강제송환하고 있으며, 강제송환이 국제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문건이 국가 간의 명시적 합의이기에 국제조약의 일종임에 틀림없고 또한 국제조약은 국제관습법과 함께 국제법을 구성하는 것이기에 중국 주장이 옳은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2004년 4월2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432호로 수정 보충된 북한 형법에 ‘공민이 조국을 배반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쳤거나 투항·변절하였거나 비밀을 넘겨 준 조국반역 행위를 한 경우에는 5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특히 무거운 경우에는 무기 로동교화형 또는 사형 및 재산몰수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는데(제62조) 탈북자가 강제송환되면 이 규정에 의해 처벌받게 된다. 이것은 정녕 박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도 허가 없이 국경을 넘으면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그것은 출입국관리법에 대한 위반일 뿐, 북한의 경우처럼 조국반역죄로 중형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이 당사국인 66년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는 “어느 누구도 고문, 잔인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있고(제7조), 84년의 고문금지협약에는 “체약국은 어느 누구이든 고문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믿을 실질적 근거가 있는 타국에 추방하거나 송환 또는 인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제3조1). 중국에 의한 탈북자 강제송환은 이러한 규정에 대한 위반이며 이유 여하에 관계없이 사람을 박해의 우려가 있는 곳으로 내몰지 않아야 한다는 국제법상의 대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중국은 상기 문건을 근거로 탈북자를 강제송환할 수 없다. 중국은 출입국 관리에 관한 법령 위반으로 탈북자를 처벌할 수 있지만 박해가 기다리는 곳으로 그들을 강제송환할 수는 없다. 국제법상 강제송환 금지 원칙이 상기 문건에 의한 의무보다 상위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에 의한 탈북자 강제송환은 국제법에 따른 조치랄 수도 없고, 박해가 기다리는 곳으로의 송환이기에 인도주의에 따른 조치랄 수는 더욱 없다. 북한 형법에 ‘비법적으로 국경을 넘나든 자는 2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제233조). 상기 문건은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다.
[세계일보 2007-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