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과학칼럼] 우주시대의 미신


동문기고 김상준-[과학칼럼] 우주시대의 미신

작성일 2007-05-09

[과학칼럼] 우주시대의 미신                                   

- 김상준 / 경희대교수·우주과학 -
 
미국 방문 중 슈퍼마켓 같은 데를 들어가 보면 신문 진열대에 타임지나 뉴스위크지 같은 주간지들과 통속적인 주간지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통속적인 주간지들의 톱뉴스들을 보면 대개 허무맹랑하다. 예를 들어 한 여인이 외계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주장하는 둥, 캔자스시티에서는 흡혈귀가 나와 여러 사람의 피를 완전히 빨아먹고 그 사체를 고속도로 주변에 버렸다는 둥.

이런 황당한 뉴스들이 파파라치에 의해 찍힌 연예인들 ‘굴욕’ 사진과 함께 1면에 소개되곤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초강대국이자 선진국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러한 주간지 판매량이 타임지나 뉴스위크지를 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이다. 달나라는 물론 목성, 토성까지 인공위성을 보낸 미국인들이 이러한 뉴스에 관심을 보이고 주간지를 구매함으로써 이렇게 황당한 뉴스를 만드는 사업이 수십억달러 산업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넘치는 ‘만병통치약’-

우리나라는 그럼 다르냐.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그 유형은 다르더라도, 웬 몸에 좋다는 황당한 음식들이 그리 많은지. 아주 오래 전엔 메추리알, 도룡탕(지렁이를 넣어 삶은 탕) 등이 만병통치약으로 신문광고에 나오곤 했다. 왜 세 끼 올바른 식사와 적당한 운동보다 이런 것들을 탐하는지. 특히 올해는 황금돼지 그림이 부와 재산을 부른다고 팔리는데 정말 그것을 믿고 그것들을 사는지. 왜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적 추론과 지식은 하잘 것 없는 것이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보신음식, 각종 초현상과 신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사실인 양 믿고 있는 것인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그릇된 믿음을 어느 특정집단이 가지고 있다면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적 근거 없는 특정집단차별, 지역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사이비 종교단체들, 의학적 근거 없는 각종 사이비 건강식품 구매와 사이비 의료시술을 받는 행위 따위이다. 선진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러한 비과학적 행위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21세기 우주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궤도에 떠있는 통신위성들이 인터넷 정보를 빠르고 투명하게 지구 곳곳에 전달하는 우주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왜 이런 그릇된 믿음이나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의 허약한 믿음 때문이다. 이 성향은 고대, 현대를 초월해서 나타나며, 동서양 구분이 없고, 선진국 후진국을 가리지 않으므로 인간의 원초적 성향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이 성향은 지식의 과다에도 관계가 없을 때도 있다. 우리는 종종 박사, 교수, 의사 등 지식인들이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가정을 버리고 더 나아가서 사회문제 속에 등장하는 경우를 본다. 지식인들 중에도 몸에 좋다면 쉽게 포섭되어 이상한 음식들을 먹는 사례를 종종 본다. 오히려 사이비 단체에서는 이들 지식인을 앞세워 많은 사람들이 믿게끔 조정하기까지 한다.

혹자는 조그마한 거짓말이나 산타클로스 같은 상상이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지 않느냐 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러한 가벼운 웃음거리가 생활에 조미료처럼 등장하는 것은 자신과 남의 생활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자신과 남의 생활을 변형시켜 고통을 안겨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세상은 무료하지 않다-

사실 우리의 생활이 이러한 것들을 등장시켜야만 할 만큼 무미건조한 것인가. 북쪽에선 때때로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하고 요즘은 핵무기 생산으로 협박하고 있다. 반면 많은 북녘 동포들은 아직도 기아상태에 있고, 남쪽에선 그동안 IMF,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를 겪었다. 전직 대통령 혹은 측근들의 천문학적 부정부패 등을 겪은 우리의 삶은 결코 무미건조하지 않다.

흡혈 귀신이 있어서 우리를 더 깜짝 놀라게 해야 할까. 아니면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우리를 정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야만 할까. 우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무사히 살면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경향신문 2007-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