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김민전-김민전 교수가 본 고건
[대선주자 신년 인터뷰] 김민전 교수가 본 고건
"정치보단 정책"… 겸양과 합리의 덕 지녀
- 김민전 /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당신에게 한 표를 달라고 부탁하는 자는 선택하지 말라’ 공화주의자들이 오랫동안 갖고 있던 후보 감별법이다. 로마시대 이래 공화주의자들은 지도자의 야망과 타락이 공동체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봤기 때문에 온화하고 겸양의 덕을 가진, 법에 의한 지배를 하는 지도자를 원했다.
고건 전 총리는 공화주의적 이상을 잘 구현하는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는 겸양의 덕을 지니고 있다. 서울을 세계 5대 지하철 도시로 만든 주인공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는 유권자가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청빈하다. 평생 공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산은 집 한 채가 거의 전부다. 명품 만년필과 시계로 치장한 채 진보 구호를 외치는 일부 정치인들과 달리 양복은 낡아서 번들거리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국민은 부자와 빈자로 나눠질 수 있는 집단이 아닌 것 같다.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공직을 수행하였고 이 때문에 공화국이 바뀌어도 다른 공직자들처럼 단죄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내사람 만들기’와 ‘세 불리기’ 같은 사심으로 국정을 운영한 것이 아니라 법의 무게를 느끼며 법에 의한 국정 운영을 해왔다. 통합신당 창당 문제 등 정치 일정에 대한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지만 정책 문제를 얘기할 땐 눈빛마저 반짝이는 데서 국가와 정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확인된다.
사회의 정당한 권위가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편가르기가 횡행하는 민주주의의 병리 현상을 보며 유권자들은 고 전 총리의 공화주의적 리더십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 하다. 이 때문에 세 불리기를 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는 대안정치 세력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 공화적 리더십이 가지는 딜레마가 있다. 대중에 대한 호소보다는 합리성과 법을 바탕으로 하는 공화적 리더십은 보수적으로 비치기 싶다. 고 전 총리가 자리 잡을 진영이 반(反) 한나라 진영임을 감안하면 보수적 이미지는 본선 경쟁력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범여권의 후보 경선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일보 2007-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