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논술 스트레스 줄일 수 없을까?


동문기고 황승연-논술 스트레스 줄일 수 없을까?

작성일 2007-05-02

[시론] 논술 스트레스 줄일 수 없을까?                     

- 황승연(영문 78/30회) / 경희대 교수.사회학 -
 
우리 사회가 논술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신문과 함께 배달되는 광고 전단지에 논술학원이 빠지지 않는다. 유치원 논술교실이 있고 초등학교 독서 논술학원이 있다. 동화책도 논술동화책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팔리는 세상이다. 동화책을 읽기 전에, 내용을 느껴보기도 전부터 분석을 강요받고 있다. 부모들은 이렇게 분석적으로 독서를 하는 아이들이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어느 대학의 입시 관계자가 방송에 나와 논술학원에서 배운 학원식 논술답안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름이 낯선 '통합논술 확대'라는 기사를 보면 불안해진다. 무엇이 진실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도대체 논술학원을 다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논술학원이 부족한 지방 중소도시 학생들이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부모들의 혼란과 박탈감은 더욱 심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학 입학에 모든 것을 거는 풍조와 맞물려서 논술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교수들은 문제점들에 대해 동료들과 논의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 끝에 객관적인 자료를 모아 보기 위해 지난 연말 인터넷조사를 실시했다. 291명에게서 답을 받았는데 논술시험이 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에 적합하지 않고,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는 의견이 더 많았다. 응답자의 44.5%가 논술시험이 공정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채점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렇다는 대답은 26.9%에 불과했다. 교수들 또한 논술 스트레스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시험의 채점이 교수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채점 기준이 상세하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창의성이나 논리성 등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과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전문가다. 따라서 논술 채점은 어느 정도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자각하고 있는 교수들의 자괴감과 사회적 책임감이 이번 조사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본다.

객관식 위주의 평가에만 익숙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의 현실을 감안할 때 논술시험은 교육정상화를 위해 많은 순기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논술시험을 더 많은 대학에서 치르게 될 것이고 더 복잡하게 시행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채점에 대한 교수들의 이러한 고민과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논술시험은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 도입한 것이지, 수능과 내신의 변별력을 보완할 목적으로 도입된 게 아닐 것이다. 그러면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체계적인 독서습관을 갖고 있다면 쉽게 쓸 수 있도록 논술 문제가 출제되어야 한다. 또 1, 2점 차이 때문에 당락이 결정되지 않도록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누는 채점 방식이나 합격자의 2~3배를 논술로 미리 가리는 등 수험생들에게 덜 민감한 방식의 도입을 연구해야 한다. 논술시험이 대학의 우수학생 선발과 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에 도움이 되려면 각 대학은 채점 방식을 바꿔 좀 더 많은 시간을 채점에 쏟아야 한다. 채점 전문위원을 두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논술시험이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는 것에 대해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교수들이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교수들의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조사는 이러한 교수들의 문제제기다. 변별력만을 위해 논술시험을 치른다면 교육의 목적은 사라지고 과정만 남게 된다. 논술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을 항상 염두에 둬야 우리 사회가 논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200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