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중국, 사회주의 국가 맞아?


동문기고 강효백-중국, 사회주의 국가 맞아?

작성일 2007-04-11

[시론] “중국, 사회주의 국가 맞아?”     

- 강효백 (경희대 교수·중국법) -

“당신네 나라, 한국, 자본주의 국가 맞아?”
중국 체류 시절 어느 날, 터놓고 지내던 북경대학의 천(陳) 모 교수가 따지듯 물었다. 그는 소설 ‘상도(商道)’의 중문판을 가리키며 “이 책 꽤 재미있더군, 그런데 책의 결말은 이해가 안 돼, 평생 모은 재산을 자손한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다니, 이 책처럼 혹시 한국사회가 개인재산의 사회 환원을 찬양 고무하는 분위기인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나는 “개인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숭고한 행위에 트집 잡는 자를 명문 대학 교수로 재직시키는 당신네 나라, 중국, 사회주의 국가 맞아?”라고 맞받아쳤다.
나의 반격을 그는 호탕한 웃음으로 받았다. 그 후 나는 ‘상도’를 읽어본 다른 중국 독자들의 소감을 귀동냥하여 보았다. 결과는 천 교수의 반응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들이 정녕 평균과 배분이 미덕인 사회주의국가의 ‘인민’이란 말인가? 어지러웠다.
지난 10월 30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주택의 사유화를 사실상 인정하는 물권법 초안의 심의를 완료하였다. 내년 3월 전인대 전체회의에서 통과가 확실시되는 이 법안은 의미가 큰 것이다. 1982년에 헌법으로 사유재산권 보호를 규정한 이래, 1985년에 상속법을, 1999년에 계약법을 제정 시행하여 온 중국이 물권법마저 제정한다면, 경제제도로서의 ‘사회주의’는 중국 땅에서 종언을 고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국시(國是)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이다. 우리 지식인들의 눈길은 뒤의 ‘시장경제’보다는 앞의 ‘사회주의’에 더욱 쏠려 왔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는 사회주의를 과거처럼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식으로 접근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잦아들고 있다. 후안강(胡鞍鋼), 왕멍퀘이(王夢奎) 등 중국의 핵심 브레인들은 세계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공평하고 자유로운 경쟁’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하면서, 중국 ‘사회주의’의 영혼도 ‘공평’이며 ‘시장경제’의 본질도 ‘자유경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 상징, 아니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지폐를 비롯한 어음, 수표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상용하여 온 나라 중국. 5000년 비단 장수 왕서방, 생래적 자본주의자들, 상인종(商人種)의 나라가 사회주의계획경제체제를 실험하였던 시기는 1949~1978년, 딱 30년간뿐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 일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중국 땅은 온통 시장이고 중국인은 모두 상인들이며 중국정부는 껍데기만 공산당을 둘러쓴, 본질은 경제성장제일의 원조(元祖) 자본주의 개발독재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국이 문화대혁명의 광란에 빠졌을 때 한국은 경제대혁명을 이루었다. 그 잃어버린 10년만 아니었다면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앞섰을 텐데.”
이는 1990년대 여러 중국 지인(知人)들로부터 듣던 탄식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중국은 사회주의 미몽에서 깨어나 이토록 경제건설에 매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한국식 문화대혁명의 삼매경에 푹 빠져 있지나 않은지…”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중국인은 없다. 그들은 이미 알아채 버린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 한국을.

[조선일보 2006-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