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의 힘


동문기고 말 한마디의 힘

작성일 2007-04-06
말 한마디의 힘 
안호원 news@pharmstoday.com 
며칠 전 한 주부가 부도난 남편이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낙담하며 삶을 포기하려고 할 때 당신 곁에는 내가 있고 나에게는 당신이 있듯 모든 것을 다 잃은 건 아니니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고 남편을 위로하면서 사업가로 성공시킨 성공담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우연히 듣게 됐다.

주된 내용은 경제적인 문제로 남편이 좌절감에 깊이 빠져 일시적으로 방황하는 등 일상의 이야기들, 그 동안 속앓이 했던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인고의 과정을 거친 후 맺어지는 결과를 사람들에게 던져 주었다.

필자는 이 방송을 청취하면서 지난 28년 넘게 나와 동거 동락하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과연 나는 아내에게 몇 점짜리 남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란 누구에게나 가정에서 중요한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나 영세업자로서 경영난에 시달리는 남편을 무시하지 않고 인내로서 견디며 내조한 그 주부의 애절한 사연을 듣는 순간 더욱 아내의 소중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굳이 역사의 흐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한 남자가 성공한 이면에는 반드시 어진 아내의 깊은 내조의 공이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가화만사성’ 이란 옛 말처럼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봄날 눈 녹듯 매사가 잘 풀려나간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필자가 이렇게 지금 이 시간 편하게 앉아서 원고지를 메우며 한 세월을 보내는 행복감도 어찌 보면 속앓이를 하면서도 내색 한 번 보이지 않고 묵묵히 내조하는 이조형(李朝型) 아내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정의 행복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삶의 안식처요, 또 우리 모두의 보금자리이기도 한 가정이 행복한 안식처가 되는 것은 가정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절대적이겠지만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싸주며 어떤 말을 무슨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따뜻하고 용기 있는 말로서 힘이 될 수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가슴에 상처를 만드는 흉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에 많은 변화가 오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공된 자로, 실패된 자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그 만큼 만남이 중요하고 그런 만남이기에 반드시 좋은 만남이 되어야 한다.

한번 밖에 오지 않는 인연으로 부부의 관계가 되었을지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운명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연유로 하나가 된 부부는 더욱 더 서로를 이해해주고 존중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함은 물론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한 사이일지라도 말 한마디 때문에 금이 가고 심지어는 헤어지는 아픔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불행을 초래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스스로 인식하든 못하든, 원하든 원치 않든, 그리고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여러 가지 형태의 끊임없는 대인관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또 실언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여유를 갖고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 가질 수 있다면 내 곁에 함께 했던 이에게 상처를 덜 줬을 수도 있다. 또 말을 하기 전 상대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상대방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일평생 선(善)을 행하며 살았더라도 말 한마디의 실수로 그 선을 깨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잠시 스쳐가는 봄바람처럼 오랜 세월 속에서 수많은 인연으로 많은 이들과 만나 웃고 울고 함께 하고 기뻐하며 아쉬움으로 작별을 하는 우리네 삶이다.

그런 운명을 지닌 우리이기에 그런 까닭을 알았다면 타인의 아픔과 기쁨을 내 아픔과 기쁨처럼 여기고 함께 하며 설령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의 말에 귀기울여 주며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관계가 좋은 관계가 되고 좋은 만남이 되는 것이다.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전생 운운하는 인연의 뜻을 말하지 않아도 그런 소중한 인연으로 만남이 이루어진 우리이기에 값진 하루를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야 한다. 언제나 함께 하지만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운명을 알았다면 서두에 언급한 그 부부처럼 서로를 감싸주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해하고 인내하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런 좋은 관계를 원하면서도 정작 자기 스스로는 좋은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만남의 관계를 통해 어떤 이에게는 좋은 관계를 갖고 있는데 또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오랜 세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생각했던 이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당혹해하며 실망하고 급기야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윤리학을 강의하는 나로서는 늘 첫 강의를 시작하면서 가정과 가족을 중시하며 아무리 가족관계라도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고 칭찬의 말을 하되 가급적 나쁜 말은 하지말고 사랑이란 말은 아끼지 말고 하라고 한다.

아울러 “당신이 곁에 있어 난 좋아”라는 말도 아끼지 말라고 강조한다. 가족과의 관계가 좋아야 친구 관계가 좋아지고 나아가 사회에서도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곁에 있어서 좋다고 하며 좋은 관계를 갖고자 하는데 다른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좋은 말은 반드시 그 대상이 곁에 있을 때라야 한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 대상이 곁에 없을 때 과거형으로 된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

오히려 아픈 상처와 후회만 남게 될 뿐이다. 그런 말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해야 비로소 빛이 나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행복을 원하지만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지금까지 진정한 행복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행복의 기준을 산수처럼 계산을 하려고 하고 남과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요즘 유행처럼 행복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행복에 관련한 책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다.

줄잡아 26권이나 출간 됐을 정도라니 가히 행복 열풍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같은 책 몇 권을 읽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복을 찾을 수가 있었다면 그 많은 책들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 같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갈증이 더욱 증폭되면서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같은 생각이 필자만의 지나친 기우에서일까. 분명한 것이 있다면 행복은 지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은 어떤 것으로도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욕망을 줄일 수만 있다면 줄이는 만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남편이 되었던 아내가 되었던 일상의 생활에서 “여보, 당신이 있어 고마워”라는 그 말 한마디가 주는 힘은 그 어떤 보약의 힘보다 크고 행복함을 만끽한다.

행복은 타인이 계산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느끼는 거다. 아무래도 행복한 삶을 살려면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시인.수필가.AIU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