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의 목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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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으레 그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창회 같은 사적 모임에 참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대개 이 같은 모임은 해마다 한 차례씩 열리는 연례 행사이다 보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석할 수밖에 없다. 일신상의 이유로 빠지게 될 경우 최소한 2년만에 보게 되는 그리운 추억의 얼굴들이다. 그런 관계이다 보니 만나는 이들마다 반갑고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모임이 많으면 많을수록 피곤하고 경제적인 지출도 많아져 즐겁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도 초등학교 동창회, 재경 동창회, 고교 동창회, 거기다 대학이다, 대학원이다 치면 무려 10개가 넘는다. 개중에는 임원으로 있는 곳도 있다. 덕분에 연말이 되면 벌이도 없으면서 덩달아 바쁜 시간을 보낸다. 나이든 탓인가? 해를 거듭하면서 만나는 즐거움이 소록소록 솟아나는 게 남다른 연민의 감정이 짙게 인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수평의 관계인 지연, 학연의 친구들과는 다른 집단에서 느끼지 못하는 소통의 즐거움을 맛보며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그 자리엔 높은 자도, 낮은 자도, 그리고 잘난 사람, 못난 사람도 없다. 호칭도 없다.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몇 순배 술잔이 돌고 취기가 살짝 오르기 시작하면서 떠들어댄다. 떠드는 자도, 듣는 자도 모두 벌건 얼굴로 말하고 듣는다. 간혹 의견이 달라 논란이 벌어져도 불쾌한 빛이 없다.
막무가내식 우격다짐이나 막말을 할 경우라도 마음 선한 누군가가 나서 조정자의 역할을 하며 "자, 우리 한잔하고 나서 얘기하자"라며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다. 이쯤 되면 대개는 이를 수긍하고 '허허'하며 술잔을 높이 든다. 이 같은 분위기는 결국 수평의 관계에서 상호간 신뢰감이 쌓여 있고, 사회 조직에서 처럼 경쟁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서 우리 사회는 역시 인브리딩(inbreeding, 동종교배) 체질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체질이기에 옛적부터 학연, 지연, 인맥, 계파 등을 통해 쓸데없는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사회 각계 각층의 갈등과 반목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달라진 사회 과학적 현상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급격하게 증가하는 자살율이며, 또 하나는 해외 이민 신청자의 증가라고 한다. 해외 이민의 경우 이민이 되지 않으면 '조기유학'이라는 명목으로 가족들을 모두 해외로 보내고 국내에서 돈을 송금하는 외로운 '기러기 아빠' 군상이 는다는 것이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질까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면서 오늘의 이 사회가 국민들로 하여금 자꾸 미래의 소망을 포기할 정도로 좌절의 늪에 깊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철인 키에르케고르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고 지적했듯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힘들지 않고 편하게 살았던 때는 별로 많지않다. 다만 어두운 역사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보는 지혜의 눈이 있었기에 참고 견디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후 부터 이 나라는 과거의 역사도 없고 장밋빛 희망으로 가득한 내일도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다. 더 더욱 불안한 것은 이 사회가 두 귀를 틀어막고 오직 입만 갖고 떠드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말들이야 다 청산유수로 유창하고 교훈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 뺕아버리고는 상대방의 대답은 아예 듣지도 않고 무시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가 무슨말을 하든 귀 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변화 시키려하지않는 다는 데 있다.
세상이 요꼴이 되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출연자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제 이마를 때리며 자학하는 '마빡이' 개그들의 모습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짓게 되는 서글픈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어쩜 우리의 정치도 이들 개그들의 행위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신년 벽두부터 극단과 파행의 고질병은 여전해 보인다. 이제 올해 말 다가올 대선이라는 목표를 두고 벌써부터 마빡이 개그가 시작된 것 같다. 아울러 인브리딩 체질들이 날뛰며 소통부재 풍조가 더욱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거기다 이혼 법정을 소재로 한 "부부클리닉 - 사랑과 전쟁" 역시 그 프로에 깊이 빠져 시청을 하고도 뒷 맛이 깨운치 않다. 또 아침방송중 "연예인 집"을 소개하는 프로 역시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며 사는 서민들에게는 위화감을 조성 할 뿐이다.근근히 하루하루 땀 흘려 사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들이 희망이 될수 없다. 서민들의 경우는 정말 살 맛 나지 않는 프로다.
드라마 역시 이혼, 불륜관계가 버젓이 방영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통해 그나마 교훈으로 얻는 것이 있다면 가정폭력과 돈 문제로 추악해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은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빠른 세월만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다.
그런데 문제는 왜 바쁜지도 모르고 무엇 때문에 바쁘게 뛰어야 하는지 조차 모른 채 바쁘게 산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쁘다고 무작정 달려만 가는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작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혼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혼자 살아남는 법만 생각한다. 혼자만이 존재하는 세상, 혼자만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바쁘게 살지라도 내 삶의 우선 순위를 제대로 정하면서 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돌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진정한 자아를 돌보는데는 소홀했음을 인정해야한다. 단지 스스로가 돈벌이 수단의 도구로 전락되었을 뿐이다.
이제 복돼지띠인 정해년 새해가 밝아온 지도 벌써 열흘이 넘어서고 있다. 어릴 적에는 빨리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새 나이 먹는 것이 안타까워지는 그런 나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몇 십년 뒤에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을 나지만 남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기에 난 글을 쓴다. 생의 절반 이상 귀향살이를 하면서도 많은 책을 쓴 다산 정약용, 화급한 전쟁 중에서도 '난중일기'를 썼던 이순신 장군처럼 하루의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내 안의 정서와 마음과 정신을 보듬기 위해서 비록 눈이 침침하고 잘 보이지 않아 핸드폰에 저장된 문자를 실수로 지워버릴지라도 오늘도 난 꾸준하게 나의 글을 쓸것이다.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맴돌고 있는 희망을 잡을 것이다. 올해는 대선의 해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인브리딩 체질을 개선, 벽을 허물며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 소통부재 풍조가 사라지는 밝은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