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의 목요칼럼>
상처 입은 사람들
- 슬픈 연가 -
안호원
news@pharmstoday.com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면 참으로 좋은 세상 같아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병이 아주 깊게 든 사회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뉴스 하나를 보더라도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들과 반목하고, 시기하고, 싸움을 하는 등 온통 어두운 것들뿐이다.
인류의 첫 살인자인 카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인 것 같은 가족 살상까지 거침없이 벌어지는 패역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해심과 용서를 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섹스는 모든 동물이 인간과 똑같지만 이해나 용서를 모른다.
따라서 인간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때 삶의 가치를 느끼고, 행복과 보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옛날은 '이웃사촌'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웃과 따뜻한 인정을 나누며, 비록 가난하게 살았어도 나눔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그런 모든 것들이 전설적인 옛말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그런 추억이 없는 젊은이들을 보면 서글픔보다는 측은한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도 젊은 세대들이 선배를 내몰며 오만함으로 싸늘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인간애'의 따뜻하고 포근함이 아득한 먼 옛날의 추억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바빠진 생활속에서 현대인들은 자기 이웃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점점 개인 이기주의에 깊이 빠지면서 '위아래'를 무시한 채 거칠어진 성격으로 개조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반미치광이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개인 이기주의로부터 발생한 불감증이다.
이는 약육강식의 동물학적 본능이 현대인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관의 역전현상이라 할 수 있다. 포식의 법칙이 난무하는 열대 정글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희생만을 강요하는 이기주의의 종말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개인 이기주의는 전쟁과 불안, 상처와 소외, 사회적 불평등과 무관심 등을 남긴다.
지금 우리는 정치, 경제 등 모든 문제에 있어 공동체의 존립이 위태로운 시기에 와 있다. 자신만이 살자고 무서우리만치 몸부림친다.
진정한 이웃이란,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필요할 때에 언제 어디서라도 욕심없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그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또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인생의 신비 중에 하나가 있다면 아마 마음의 상처일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의 상처를 알기 위해 내 안에 있는 상처를 꺼내보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면 그 상처를 받았을 때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아픈 과거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고통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상처가 아름다운 꽃잎의 빛깔을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아픔이 인생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이해한다.
셰익스피어는 "다쳐보지 않는 사람은 남의 흉터를 보고 웃는다"고 말했다. 그렇다. 몸에 흉터를 가진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의 흉터를 보고 웃지 않는다.
모든 것을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힘들 때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내게 있다. 그럴 때마다 그 아픔을 잊기 위해 기도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흥얼거려 보지만 쉽게 그 상처가 떨쳐지지 않고, 내 가슴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무던히도 날 괴롭힌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면서도 완전하게 지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불혹의 나이를 훨씬 더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덜 수양되었나 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잊은 것은 있어도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알몸에 빈손으로 왔는데 잃을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리 못생겼어도 귀여운 면은 있는 법이다. 첫 만남의 설레임과 마지막 만남의 아쉬운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또 다른 아침의 밝은 태양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자.
언제인가는 지는 낙엽 같은 이별을 해야 할 우리 인생인 것을 알고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인간으로서 가치있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인구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고, 교회 십자가가 그렇게도 많은 이 사회가 왜 아직도 어둡고 상처투성이인지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시인.수필가. 칼럼니스트]